영화 끌어가는 건 작가일까, 주인공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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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12면

1921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연극사에 길이 남을 희한한 공연이 벌어진다. 커튼이 올라가자 무대에서는 배우들이 루이지 피란델로의 새 작품을 공연하는 게 아니라, 계속 연습하고 있다. 연극 공연을 보러 온 관객으로선 배우들이 옷도 대충 입고 아직도 리허설을 하고 있으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이런 장면도 낯선데, 갑자기 6명으로 구성된 이상한 가족이 극장에 나타나서 다짜고짜 감독을 만나게 해달라고 소란을 피운다. 자기들은 어떤 작가에 의해 탄생했는데, 그만 그 작가가 자기들을 잊어버리고 내팽개치는 바람에 단 한 번도 무대에 호출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실재하는 인물들이 아니라 허구의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 행세를 하며 자기들의 희망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픽션의 등장인물이 실제의 작가와 담판을 벌이는 ‘반(反)연극’의 걸작, 곧 루이지 피란델로의 ‘작가를 찾는 6명의 등장인물’은 이렇게 탄생했다.

마크 포스터의 지적 유희 ‘스트레인저 댄 픽션’

실제 세계를 침범한 허구 캐릭터
마크 포스터 감독의 ‘스트레인저 댄 픽션’(2006)은 피란델로의 드라마를 변주한 아주 지적인 작품이다. 여기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허구의 내용이 아니라 허구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 영화에서도 작중인물, 곧 캐릭터가 전지적인 작가의 의도를 위반하고 실제의 세계로 침범한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국세청 직원 해럴드(윌 페렐)는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 소설의 등장인물임을 알게 된다. 희한하게 그는 작가가 타이프를 치며 스토리를 중얼거릴 때, 그 소리를 듣게 된다. 자신의 일상은 그 목소리가 말하는 대로 진행되고, 이러니 받아들이기에 황당하지만 자신은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허구의 주인공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허구라는 사실도 비극인데, 더 큰 비극은 해럴드가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아버린 데 있다. 작가(에마 톰슨)는 비극 전문가로 이번 소설에서도 주인공을 죽이려고 작정했기 때문이다. 자,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된 작중인물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해럴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극을 쓰고 있는 작가를 찾아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결말을 바꾸려고 애쓴다. 문학 장르로 말하자면,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제부터 영화는 소설을 써나가는 작가와 그 소설의 방향을 바꾸려는 작중인물의 갈등으로 발전해간다. 찰리 카우프먼이 시나리오를 썼던 ‘어댑테이션’(감독 스파이크 존스, 2002)의 영향도 보이는 대목이다.
 
비극이면 죽음, 희극이면 생존
영화 속에서 해럴드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며, 흥미진진하게도 이것이 비극으로 갈지 희극으로 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문학교수(더스틴 호프먼)는 이탈리아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주장을 참고삼아 해럴드에게 조언을 하는데, 죽지 않고 살고 싶으면 자신의 이야기를 코미디로 만들어가라는 것이다. 칼비노에 따르면, 주인공이 죽으면 비극이고, 계속 살아가면 코미디인 단 두 종류의 허구만 존재한다. 해럴드는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세금을 거두는 직업을 가진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고, 별 유머도 없는 자신이 코미디의 주인공은 될 것 같지 않아 절망에 빠진다. 불행하게도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날 것 같다. 그러면 그는 죽는다.
이때 등장한 여성이 자기의 철학에 따라 세금 완납을 거부하는 빵집 아가씨(매기 질렌할)다. 국민의 세금이 과도한 국방비에, 부실기업 지원금에 낭비되는 데 반대해 세금의 일부를 다른 사회봉사기관에 대신 기부하는 당찬 여성이다. 해럴드는 이 여성과 티격태격하는 사이 서서히 사랑이 싹틈을 느낀다.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에 만나서 싸우던 남녀가 결국 사랑하게 되는 것은 상투적인 로맨틱 코미디이니 계속 살아갈 희망이 보인다는 것이다.

관습적 형식을 전복한 드라마
이렇듯 영화는 허구를 구성하는 과정에 작중인물을 끌어와, 작가와 함께 결말을 맺는 역할을 부여했다. 작중인물이 살아서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허구와 실제의 경계가 무너져 두 공간이 서로 소통하는 데서 ‘스트레인저 댄 픽션’의 매력이 드러난다. 허구 속에선 해럴드와 애인이 로맨스를 벌이고 있고, 실제의 공간에선 작가가 이들의 관계를 비극으로 몰아가는 중이다. 누가 승리하는가에 따라 이 영화의 장르도, 비극으로 혹은 코미디로 결정날 것이다.
‘몬스터 볼’(2001), ‘네버랜드를 찾아서’(2004) 등의 문제작을 선보였던 감독 마크 포스터는 이 영화에선 작가와 캐릭터 사이의 관습적이고 일방적인 관계를 전도(顚倒)시키며, 창작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드러냈다. 작가는 더 이상 전지적이지도 않고, 등장인물은 작가에게 전적으로 종속적이지도 않다. 더 나아가 캐릭터는 작가의 역할을 일부 빼앗았다. 작가와 캐릭터 사이의 관습적인 관계에 균열이 나 있는데,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형식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접근법이 한 편의 경쾌하고 지적인 드라마를 낳은 것이다.
코미디 배우인 윌 페렐의 진지한 연기도 흥밋거리이고, 에마 톰슨·매기 질렌할·더스틴 호프먼 등 쟁쟁한 배우들의 실력도 볼 만하다.
1980, 90년대 펑크록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덤으로 주어진 매력이다. 클래시·더 잼·스푼 등의 펑크 넘버들이 사용됐다. 아름다운 장면, 곧 주인공인 해럴드가 애인 앞에서 세레나데를 부를 때 연주되는 펑크록은 레클리스 에릭의 ‘Whole Wide World’이다. 자기만의 여인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겠다는 연가(戀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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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씨는 미술과 몸을 섞은 영화 이야기『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영화, 미술의 언어를 꿈꾸다』로 이름난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사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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