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 대선의 해, 다시 생각하는 케네디·링컨의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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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번 주엔 공교롭게도 미국 역사상 위대한 대통령을 꼽히는 링컨과 케네디를 다룬 평전이 여럿 선보였다. 『통합의 리더십 대통령 링컨』(리처드 키워딘 지음, 북스타, 2만원)을 비롯해 링컨 대통령을 다룬 책은 세 권이나 나왔다. 링컨의 포용력과 케네디의 비전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지 싶다. 연말 대선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그 중 두 권을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 주]

JFK 케네디 평전 1,2
로버트 댈럭 지음,
정초능 옮김, 푸른숲,
각 권 640·756쪽,
각 권 3만·3만5000원

 대통령 자리에 고작 1000일밖에 머물지 못했던 존 F. 케네디는 어떻게 미국 역사상 손꼽히는 지도자의 반열에 올랐을까. 보스턴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가 용기와 결단력을 지닌 진보주의자로서의 그를 조명했다.

 케네디의 첫째 공적은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은 국가적 목적의식을 상실한 상태였다. 1950년대 물질적 행복을 구가하는 동안 권태와 무기력·불안·무관심이 만연한 사회가 된 것이다.

아차하면 참담한 공황으로 귀결됐던 1920년대의 전철을 밟을 판이었다. 거기에다 동서 냉전은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케네디의 고민은 그래서 더 깊었다.

 

‘세계 역사상 가장 풍요하고 가장 안락한 사회로 등장한 미국, 그 미국이 공산주의의 위협에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과연 쿠바와 라오스와 베트남과 아프리카의 혁명가들처럼 그렇게 뜨거운 열정으로 불타오를 수 있겠는가.’(492쪽)

그는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 수락 연설에서 건국 당시 ‘개척자 정신’을 다시 일깨웠다.

 “지난날 선구자들은 새로운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 자신들의 안전과 안락과 때로는 목숨까지 내던졌습니다. 그분들은 회의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의 신조는 ‘저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공동 목적을 위해서’였습니다. … 오늘 우리는 뉴프런티어의 가장자리에 서 있습니다. 뉴프런티어는 첩첩이 도전을 요하는 난관입니다. … 공공의 이익이냐 아니면 개인의 안락이냐, 국가의 웅비냐 아니면 쇠락이냐 그 사이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그의 ‘뉴프런티어’정신은 “나라가 당신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으라”는 취임 연설에도 이어졌다.

 대통령 취임 이후 그는 연이어 대외 정책의 시험대에 오른다. 쿠바 및 대(對)소련 관계, 베트남 내전 개입 등을 두고 역사적 평가는 비판과 칭찬이 공존하고 있다. 피그스만 침공 실패나 베트남 군부 쿠데타 용인 등은 실책으로 꼽히지만, 쿠바 미사일 위기 국면에서 흐루시초프를 위압하고 소련과 핵실험 금지 조약을 기어코 성사시켰다는 점은 그의 대표적인 업적이다. 또한 우주개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내세웠던 ‘아폴로 프로젝트(달 착륙 계획)’도 10년 앞을 내다본 비전 제시였다.

 책은 여성편력과 병력 등 케네디의 사생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는 지병인 에디슨병뿐 아니라 결장염·척추질환·전립선염 등에 시달렸고, 고통을 이기기 위해 스테로이드 약물과 진통제·수면제 등을 상습 복용했다. 저자도 인정하듯 “만약 당시 그의 건강상태가 낱낱이 폭로됐더라면 그의 백악관 입성은 불가능했을 것”이 분명하다. 또 역사가 토머스 리브스의 주장처럼 “호색 행각 등이 폭로됐다면 당연히 탄핵이 뒤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전설이 되었다. 지도자는 결국 공적으로 평가받는 것일까.

이지영 기자

권력의 조건
도리스 컨스 굿윈 지음,
이수연 옮김,
21세기북스, 832쪽,
2만8000원

 

리더십이란 말 앞에는 흔히 ‘강력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곤 한다. 도대체 ‘강력하다’는 건 무얼 가리키나. 소수의견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반대를 무릅쓰고 과감히 결단을 내린 다음, 불도저처럼 밀고 나간다는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 받는 링컨의 리더십은 그런 통념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이 주제로 잡은 링컨의 리더십은 포용과 관용으로 요약된다.
 링컨은 대통령이 된 뒤 윌리엄 슈어드, 새먼 체이스, 에드워드 베이츠와 같은 정적들을 국무부나 재무부 장관 등 핵심 포스트에 앉혔다. 처음엔 배가 산으로 올라갈 듯했지만 링컨은 이내 정적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충성을 이끌어냈다. 남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하는 데 천부적 재능을 가진 링컨은 적수들을 한데 모아 그들의 재능을 결집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게 만든 것이다. 이게 바로 링컨의 포용력의 리더십이었다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이를 상징하듯 원저의 제목도 『라이벌로 이뤄진 팀(Team of Rivals)』으로 돼있다.

 지은이는 링컨의 리더십이 논리에 근거한 설득, 깊이를 모를 정도의 친절, 원칙을 지켜내려는 의지에서 우러나왔다고 본다. 한마디로 말해 링컨의 그릇이 여느 정치인과는 비교가 안 될만큼 컸다는 얘기다.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게 유일한 야망”이라고 말하는 링컨의 낮은 자세에 유권자는 물론, 그의 라이벌들도 경계심과 적대감을 풀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랬기에 선거에서 승리한 링컨이 반대파에게서 받은 것은 미움과 질투가 아니라, 감탄과 존경이었다.

 링컨의 철저한 중도주의도 대중적 지지를 얻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고 한다. 특히 노예제에 대한 중도노선이 선거승리를 이끌었다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목적이 노예해방이 아니라 연방붕괴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일관성 있게 주장했다. 그는 또 흑인과 백인의 완전한 정치사회적 평등을 주장하지 않았다. 대통령 취임사에선 남부의 노예제를 현실적인 제도로 인정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남부의 반발을 덜 샀다고 한다. 만일 그가 백인과 흑인 사이에 완벽한 평등을 주장하는 급진주의 노선에 섰다면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단언한다.

 그래도 남는 의문이 있다. 링컨과 같은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가 어떻게 어지러운 정치판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리더십만 따지다 보면 위대한 대통령은 위대한 국민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기본 전제를 잊기 쉽다. 사실 링컨과 함께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 유권자들이 아닐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어떤 리더십에게 권력을 맡겨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린든 존슨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냈던 지은이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10년간 미국 대통령에 대해 강의했다. 1995년 역사 부문 퓰리처상을 탔으며 이 책을 쓰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지은이는 링컨의 일가친척, 친구, 정적들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그들의 눈에 비친 링컨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워낙 많은 인물이 등장해 미국 역사에 밝지 않은 독자라면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겠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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