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故 허웅 한글학회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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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뫼 허웅 선생은 우리말과 글을 갈고,닦고,지킨 국어학계의 큰 별이었다.

한힌샘 주시경.외솔 최현배 선생의 뒤를 이어 35년 동안 한글학회 회장과 이사장직을 맡아 한글이 지닌 민족자주와 민주의 정신을 널리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1918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선생이 한글 연구를 일생의 업으로 삼기로 마음먹은 것은 30년대 초 동래고등보통학교에 다닐 때 학교 앞 책방에서 '중등조선말본'을 발견한 것이 계기였다.

책을 통째로 외울 정도로 우리 말 배우기에 재미를 느낀 그는 저자인 최현배 선생을 만나기 위해 38년 연희전문학교로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한 학기를 마칠 무렵 최현배 선생이 경찰에 체포돼 교단을 떠난데다 자신도 폐질환을 얻자 학교를 중퇴, 고향에서 요양하며 15세기 국어 문법을 독학했다.

45년 광복을 맞아 김해에서 한글 강습 교실을 열어 우리말.우리글을 가르치기 시작한 선생은 이후 광신상업고등학교.한성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53년부터는 부산대.성균관대.연세대.서울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국어학 발전과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60년 한글학회 이사로 선임됐고 70년 최현배 선생이 타계하면서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선생이 한글학회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선생은 생전에 늘 한글학회의 역사에 대해 "주시경 선생이 주춧돌을 놓았고 최현배 선생이 지은 집을 내가 보수했다"고 말했다.

선생은 "한글은 우리 민족 정신의 요체"라고 주장했다. 국한문혼용론에 대해서는 "우리 글만으로도 읽고 쓰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는데 왜 한자를 섞어쓰느냐"고 반박하며 한글전용을 고집했다. 그는 90년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자 최근까지도 국경일로 지정하도록 정부에 계속 요청했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인들은 3년 전 부인 백금석 여사가 별세했을 때 만큼이나 선생은 이 문제로 낙담했다고 말했다.

55년 저술한 '주해 용비어천가'를 비롯, '국어음운론' '중세국어연구' '16세기 우리 옛말본' '20세기 우리말의 형태론' 등 그가 남긴 책들은 국어학을 반석 위에 올려 놓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익섭 서울대 명예교수(국어학.한국어세계화재단이사장)는 "국어학계의 큰 별이 졌다"고 각별한 아쉬움을 표하면서 "고인은 음운론.중세 국어 등 국어학 전반의 기초 분야를 착실하게 다지셨다"고 평가했다.

73년 3월 제2회 외솔상을 받은 이래 국민훈장 모란장.성곡 학술문화상.세종문화상.주시경 학술상 등을 받은 선생에게 정부는 26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키로 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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