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 현실적 접근/“멀리보자”로 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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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핵문제·동포애 별개로 대응
정부의 대북한 외교안보정책이 종전의 「단기적·명분론」에서 「장기 거시적·현실론」으로 선회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의 일부 여론을 의식,국내 지향적 차원에 머물렀던 우리의 외교행태가 미국­북한 연내 수교를 전제로한 장기적 포석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한승주 외교팀의 이같은 장기적 현실론 선회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론 15일 발표된 정부의 「선특사 철회」 결정을 꼽을 수 있다.
그동안 정부의 선 남북 특사교환 카드는 실효는 별로 없지만 일종의 「건드릴 수 없는 카드」였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이 카드를 철회할 경우 한국은 향후 북한 핵게임에서 배제되는 것은 물론 「정부는 핵문제에서 뒷짐이나 지고 있다」는 국내의 정치적 반향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또 남북대화가 주업무인 통일원의 입김도 얼마간 작용한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정부의 선특사 카드는 이같은 명분론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약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우선 지난해 3월이래 북한의 일관된 전략은 핵문제를 평양­워싱턴 직접채널을 통해 해결하는 한편 서울을 철저히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그동안 대화는 대화대로 안되고 「불바다」 발언같은 「스타일 구기는」일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부의 이번 결정은 북한 핵문제는 종전의 실익없는 단타 위주의 명분론에서 탈피,원칙과 현실을 감안한 정책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또 북한 벌목공 전원 귀순허용 결정도 정부의 이같은 원칙은 지키되 현실을 감안한다는 정책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동안 정부는 벌목공 문제에 대해 현실과 원칙 사이에서 고민해왔다.
정부로서 벌목공 수용은 헌법정신은 물론 일반국민 감정을 고려할 때 이는 선택 사안이 아닌 당연 사안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처럼 핵문제로 평양의 신경이 곤두서있는 판에 정부가 벌목공을 수용할 경우 이는 북측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삼대통령이 이미 『북한을 자극할 것을 우려,벌목공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던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1주일도 안돼 정부는 벌목공 전원 수용으로 선회했다. 설사 평양을 다소 자극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인권을 우리 외교의 원칙으로 삼는다는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또 이는 향후 정부가 대북정책에서 북한 당국과 동포를 별개의 차원에서 추진하겠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선회 그 자체가 아니라 정책의 성과와 그에 대한 국내 지지를 앞으로 얼마나 받게 되느냐 하는데 있다.
우선 핵문제만 하더라도 향후 1∼2개월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재사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번 선특사 철회의 결정은 나중에 「공연히 중요한 대북카드만 버렸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또 정부의 장기적인 포석에 따라 제3단계 북­미 고위급회담이 성공적으로 성사,「평양에 성조기가,워싱턴에 인공기가 날리는」 상황으로 진전될 때 이는 국내 정치판에서 강력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결국 정부의 대북외교정책 노선은 원칙을 견지하되 형식보다는 현실에 바탕을 두며 장기적인 통일을 대비한다는 거시적 현실론으로 선회한 것이나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선 정부 자신도 이같은 거시적인 시각을 얼마나 일관되게 유지하느냐에 있는 것 같다.<최원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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