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141) 프로야구 '4대 천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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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프로야구는 '4'자와 인연이 많다. 올해가 200'4'년인 데다 개막전이 4월 4일이다. 그날 프로야구는 잠실.문학.대구.수원 등 '4'개 구장에서 막을 연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4'라는 숫자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중국의 '쓰', 일본의 '시'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야구에서는 다르다. 실력이 가장 뛰어난 타자가 4번 타자며, 1루부터 홈까지 4개의 누(壘)를 밟아야 점수를 얻는 것 등을 생각하면 4라는 숫자는 인기가 높아야 당연하다.

숫자 얘기가 길어졌다. 좀 이른 감이 있지만 프로야구 개막전을 주인공으로 장식할 네명의 선수를 말하려다 이렇게 됐다. 이른바 '개막전 4대 천왕'. 올해의 개막전을 누구보다 비장하고 뼈에 사무치게 기다리고 있는 네 사람이다. 원래 4대 천왕은 동서남북에서 사람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라고 한다. 동쪽의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이 그들이다.

① 동-대구구장(삼성:롯데)=상목천왕

이상목(33.롯데)은 자유계약선수로 4년간 22억원의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해 15승을 올린 그는 올 시즌 롯데의 에이스로 꼽힌다. 당연히 개막전 선발이 유력하다. 이상목의 대구경기가 의미심장한 것은 그가 1990년 삼성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대구출신이라는 데 있다. 대구 성광고 출신의 이상목은 93년 말 삼성에서 버림받았고, 한화를 거쳐 롯데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몸값 22억원의 귀한 몸이 돼 고향팀의 가슴을 겨눈다.

② 서-문학구장(SK:LG)=상훈천왕

기타라도 등에 메고 뛰어나오지 않을까. 말 많았던 이상훈(33.SK)의 LG전 첫 경기가 이순철 LG감독의 데뷔전이기도 한 개막전에 잡혔다. 이순철 감독과 코드가 맞지 않아 LG를 떠나야 했던 풍운의 야생마. 아슬아슬한 경기 후반 외줄타기 승부에서 이상훈이 마운드에 오른다면? 그렇게 되면 드라마가 된다.

③ 남-수원구장(현대:한화)=지만천왕

96년 데뷔 이후 송지만(31.현대)의 별명은 '황금독수리'였다. 소속팀 한화의 상징 독수리 가운데서도 황금처럼 빛나는 독수리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2003년 유승안 감독 취임 이후 돌처럼 딱딱하고 불편한 존재가 됐다. 결국 트레이드돼 유니폼을 바꿔 입은 곳이 현대. 그리고 숙명처럼 개막전에서 한화와 맞닥뜨렸다.

④ 북-잠실구장(두산:기아)=재학천왕

심재학(32.기아)도 그렇다. 이상훈.송지만처럼 신임감독의 눈 밖에 났다. 두산의 신임 김경문 감독이 심재학을 쫓아버린 곳은 기아. 심재학도 숙명처럼 개막전에서 전 소속팀 두산을 만난다. 그 역시 절치부심, 이를 악물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소속팀을 떠나야 했던 이들은 4월 4일을 '사'무치게 벼르고 있다. 좀 보태서 한(恨)을 품고 있다. 그러고 보면 '4'자가 저주의 숫자가 맞나?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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