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시장에도 「북핵」 한파/한국기업들 타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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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기 예탁증서 프리미엄 크게 떨어져/양키본드 발행도 「위험부담분」 더 요구
미국의 금리상승과 북한 핵문제가 겹쳐 한국이 국제금융시장에서 돈빌리기가 크게 불리해지고 있다.
뉴욕 금융시장에 따르면 최근들어 장기채권 발행금리가 0.5% 가량 오른데다 한국에 대한 「위험부담금리」가 0.5% 높아지는 바람에 이 두가지 요인을 합쳐 작년보다 1% 포인트나 금리부담이 늘어나고 있는 것. 산업은행 발행 양키본드의 경우 93년 4월 7년만기 채권을 0.89%의 스프레드(가산금리)만 붙여 발행했었으나 최근에는 이것이 1.4∼1.5% 수준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기준금리 상승은 어쩔 수 없다해도 대표적인 한국계 은행에 대한 추가부담 금리가 이처럼 오르는 것은 북한 핵문제의 영향이 크다고 대우증권 김형진 뉴욕 현지법인 사장은 진단했다.
4억∼5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뉴욕 금융시장에서 발행할 계획이던 산업은행은 이같은 금리부담 상승 때문에 발행시기를 늦추기로 했다고 신성식 뉴욕사무소장은 밝혔다. 산업은행이 이럴 정도면 다른 금융기관들의 형편은 더 어렵다고 봐야 한다.
한편 4월6일 런던 금융시장에서 발행된 삼성전자 예탁증서의 프리미엄도 대폭 떨어졌다.
지난해 11월12일 1억5천만달러를 발행했을 때는 프리미엄이 31.15%나 됐던 것이 이번 1억달러 발행때는 17%로 뚝 떨어졌다. 기존에 유통되고 있는 「코리안 페이퍼」의 가격은 북한의 「불바다」 운운발언이 있던 3월 하순을 고비로 회복기미를 보이고는 있으나 신규발행에 있어서는 종전보다 크게 불리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한국관련 주식·채권들의 발행 및 거래여건이 악화되고 있는데 대해 한 국제금융시장 관계자는 『북한 핵문제의 영향이 아직은 심각하지 않으나 더 악화될 경우에는 금융면에서 상당한 타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기업들과 거래하는 미국계 은행들은 엇갈리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대형은행들은 종래의 입장에서 별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는 반면,중소형 은행들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한반도 정세에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며 일부에서는 대출조건 변경을 요구하는 경우도 생겨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움직임을 종합해볼 때 북한 핵문제가 국제금융시장에 이미 상당한 정도의 심리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어느나라든 「돈장수」들은 보수적이게 마련이라 북한 핵문제의 심각성을 과장해 보는 경향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들어 미국과 유럽 등 소위 선진국의 언론들이 일제히 북한 핵문제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는 바람에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런 쪽으로 흘러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금년초까지만 해도 한반도 전쟁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이야기는 월스트리트에서 듣기 어려웠다. 한국에 직접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대부분의 대형 기관투자가들도 오히려 최근의 경기상승세에 더 구체적인 관심을 표명했었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달라졌다. 한반도 핵문제가 주요 관심사로 등장하는 가운데 위험도를 가늠하기 위한 구체적 측정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만약 문제가 계속 꼬여 유엔안보리의 제재결의로 연결되는 시나리오로 갈 경우 국제금융시장에도 심상찮은 영향이 즉각 파급될 전망이다.<뉴욕=이장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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