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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장은 풀렸다” 로펌들 ‘DNA’ 바꾸기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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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2008년)은 법조계의 지각 변동이 현실화되는 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연내 발효되면 법률시장이 단계적으로 개방될 전망이다. 또 로스쿨 설치 대학이 10월에 결정된다. 국내 로펌(법률회사)들은 위기이자 기회를 맞게된다. 그동안 국내 로펌들이 독식해왔던 1조5000억원대의 국내 법률시장에 미·영의 초대형 로펌들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또 로스쿨의 도입으로 법률가의 공급이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국내 로펌 입장에선 잘하면 법률시장 개방으로 시장이 커지고, 로스쿨 도입으로 양질의 인력을 더 많이 공급받을 수 있다. 반면 잘못할 경우 미·영계 대형로펌과의 경쟁에 밀려 도태될 수 있다. 신규 법률가의 공급 과잉으로 로펌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도 있다.

 법률시장의 큰 변화를 앞두고 국내 10위권 안의 로펌들이 조직 역량을 키우기 위해 어떤 전략을 짜고 있는지를 들여다봤다.

 취재 결과 국내 상위권 로펌들이 추진하는 경쟁력 강화 방안은 ‘전문화’와 ‘국제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소속 변호사의 국제화”=법무법인 광장의 경우 현재 외국에 유학중인 변호사만 23명이다. 소속 국내 변호사 151명의 15%를 넘는다. 미국내 최상위 로스쿨인 하버드대·조지타운대 등에서 연수를 마친 뒤 현지 변호사 자격증을 따도록 적극 권장한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현지 로펌에 취업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국제 법률문화의 최신 경향과 감각을 익히도록 국제세미나 참여도 독려한다고 한다.

 법무법인 세종은 연간 매출액(770억원)의 2%(15억원)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비용으로 재투자한다. 매년 5년차 이상 5~10명의 변호사를 미국·영국의 로스쿨에 유학시킨다. 유학비용과 생활비 전액은 회사가 지원한다.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일본어 같은 외국어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한다. 특히 사내의 중국전문팀인 ‘세종 중국법 학회’를 주 1회 운영하고 있다. 소속 중국 변호사가 국내 변호사들을 상대로 중국법을 조목조목 가르친다.

 워싱턴의 조지타운대학 로스쿨에서 연수 중인 광장의 여철기 변호사는 “미국에 유학 온 변호사들이 로스쿨 법학석사(LLM) 학위를 따는 것은 기본이 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미국 주요 법대 도서관에서 미국법의 최신 경향을 공부하기 위해 책과 씨름하는 한국 로펌 변호사들을 흔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외부 전문가를 모셔라”=기업 활동이 글로벌화되면서 국제 비즈니스 관련 법률 자문업무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내외 기업 간의 인수합병(M&A), 뉴욕 증권 시장에서의 해외증권 발행 및 상장 관련 업무는 국내 로펌들에 가장 수익성이 높은 분야다. 이에 따라 금융·국제상거래·통상·국제특허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외국 변호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현재까지 로펌에 고용된 외국 변호사는 미국 변호사가 압도적이다. 세종은 31명의 외국 변호사 중 22명, 광장은 25명 중 21명, 화우는 16명중 13명이 미국 변호사다. 미국 변호사의 대부분은 한국계다. 김&장은 외국 변호사 75명 중 60명이, 태평양은 29명 중 26명이 한국계였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은 점차 바뀔 전망이다. 대부분의 로펌들은 “앞으로 한국계가 아닌 미국인 변호사 채용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했다. 미국 외 중국·유럽 등의 비즈니스 비중이 커지면서 로펌이 채용한 외국 변호사들의 국적도 중국·호주·프랑스·독일·캐나다·러시아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받은 관료들을 모셔오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이들은 자문을 통해 법률가에게 부족한 특정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보강해 준다. 화우는 최근 공정거래 분야 전문가인 허선 전 공정위 사무처장과 특허 분야 전문가인 강창순 전 특허청 관리관을 영입했다.

 김&장에는 국세청장 또는 서울국세청장을 지낸 고문만 4명이 포진해 있다. 태평양에는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 인사(이석채·김영섭)가 2명이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서정에,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은 세종에 적을 두고 있다.

 ◆“로펌, 체질을 바꿔야”=이번에 본지와 인터뷰한 7개 로펌 대표들은 선진국 로펌에서 본받아야 할 것으로 ^송무 자료의 철저한 데이터베이스화 ^체계적인 변호사교육을 꼽았다. 로펌 내부의 시스템을 과학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세종의 김두식 대표변호사는 “국내 로펌 변호사들의 개인적 자질은 미국보다 낫다”며 “그러나 소송과 자문 노하우를 축적해 활용하는 지식 관리 능력은 선진국의 60~70%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속적인 변호사 교육을 통해 현재의 문제뿐 아니라 잠재적인 법률문제까지 조언할 수 있도록 로펌의 내부 문화를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법무법인 충정은 매달 판례연구회를 열어 최신 판례 자료를 축적하고 있다. 김진환 대표 변호사는 “실패사례 분석 시스템도 만들고 있으며 매달 베스트 프랙티스(최고 변호사)를 뽑아 금·은·동상과 상금을 준다”고 소개했다.

 ◆“형사 분야도 강화”=상위권 로펌들은 2003년 말부터 9개월간에 걸친 대검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를 전후해 형사 분야를 대폭 강화했다. 대검 수사기획관을 지낸 이종왕(현 삼성그룹 법무실장) 변호사가 김&장으로 옮겨 SK분식회계 사건,대북송금 사건 등을 맡았었다. 송광수 전 검찰총장, 김회선 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등이 포진해 있다. 형사 분야에서도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 김경한 전 법무차관과 유창종 전 서울지검장이 있는 세종,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일하는 태평양도 형사 분야가 강세를 보인다.

 설립한 지 3년밖에 안 된 법무법인 한승은 송무 분야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전체 36명의 국내 변호사 중 파트너 18명은 모두 법원·검찰 출신 전관이다. 박영화 변호사는 “실무 경험이 많은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법정에 직접 서기 때문에 외국 로펌이 들어와도 이길 자신이 있다”며 “작지만 강한 로펌”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형 로펌에 소속된 검찰팀 변호사 수는 전체 변호사의 10% 이하로 적은 편이다. 국내 송무가 강하다는 김&장(20명),광장(15명),화우(9명)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숫자에 비해 매출액이 적지 않다. 로펌의 한 관계자는 “형사팀이 법인 매출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능력 있는 검찰 출신 변호사들에 대한 영입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네티즌을 겨냥한 로펌들의 IT 진출은 초기 단계다. 태평양이 ‘로 앤 비즈니스’라는 인터넷 교육사업을 시작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개척하고 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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