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 사기꾼 극성-피폐한 경제.허술한 법망 틈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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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모스크바에 사기꾼들이 들끓고 있다.
철저한 국가통제하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뒤 시장경제가 자리잡기 전의 혼란을 틈타 이들이 설치고 있는 것이다.
천정부지의 인플레와 산업생산의 급격한 감소로 경제가 피폐일로에 놓여 있고 법마저도 기능을 상실한 터여서 협잡꾼들이 발붙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공산체제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같은 사기행각은 가뜩이나 혼란과 절망속에 빠져있는 시민들의 희망조차 빼앗아 가고 있다. 사기꾼들은 유령회사를 차려 생산도 하지 않는 제품을 판다고 버젓이 광고하는가 하면 엉터리 구인광고로 비싼 수수료를 착복하기도 한다.
부동산 브로커는 집주인을 협박해 아파트를 헐값에 팔도록 강요하고 말을 안들으면 테러를 가하기도 하면서 내놓지도 않은 아파트를 속여 판뒤 집값을 갖고 줄행랑 치는 일마저 비일비재하다.
최근「주간 모스크바 뉴스」紙에 따르면 20대청년 2명이 몇몇주요신문에『모스크바로 현금을 보내주면 진귀한 약을 집으로 배달해주겠다』는 허위광고를 내 대부분 연금생활자들인 4만여명으로부터 2천만달러나 사기친 사건이 있었다.
그후 이들은 유령회사를 세워 병원과 약국을 상대로 같은 수법으로 사기를 쳐 5천만달러를 더 벌어들인 다음 사무실과 아파트2채,자동차 5대를 구입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이들은『인플레로 약값이 그동안 더 올랐다』고 고객들에게 추가 송금을 요구하다 덜미를 잡혔다는 것.
『참 놀라운 일이지요.정부나 정치가,그 누구도 믿지 않는 러시아인들이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를 만들어주겠다는 신문광고는 너무 쉽게 믿는 것 같아요.』 그 자신도 사기를 당한 적이 있는이즈베스티아紙의 미하일 베르거씨의 말이다.
그는 투자를 하면 美國시민권을 얻어주고 월24%의 이자를 주겠다고 한 회사에 결국 5천달러를 날린 한 여인이 사기를 당했다고 자신의 신문사에 호소하러 온 사실이 있다고 소개했다.
왜 그렇게 쉽게 그 사람들을 믿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그들은 멋진 사무실을 갖고 있었던걸요』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91년 10월 러시아 국가자산의 민간분배 차원에서 모든 러시아인들에게 배당된 1억4천6백만달러 규모의 사유화 쿠퐁을 놓고도 사기꾼들이 설쳐댔었다.
발행당시 1만루블(현재 약 6달러)의 가치가 있었던 사유화 쿠퐁은 국영기업의 경매때 주식을 사는데 쓰이기도 하고 6백57개의 등록된 투자회사에 신탁될 수도 있다.
투자회사들은 사기꾼들이 가장 군침을 흘리며 달려드는 사냥감임이 입증됐다.
지난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35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현금과 두둑한 보너스 보장」을 약속한 투자회사에 사유화 쿠퐁을 헌납했지만 이 회사는 쿠펑을 꿀꺽 삼키고는 달아났다.
개인뿐만 아니고 기업들도 사기행각에 놀아나고 있다.
니즈니 노보고로드에 있는 러시아 최대 규모의 자동차생산업체 가즈社의 간부는 15개의 회사를 통해 가즈社의 사유화 쿠퐁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4백65억루블의 국채를 사기당하는 일도 있었다. 〈韓敬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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