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말로만 국제화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요즘 사방에서 국제화란 말이 유행처럼 난무하고 있다.너나없이이를 부르짖고『밖을 보자』며 목청을 높인다.
국제화의 當爲性에 이론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러나 이제는 口號에만 매달릴 때가 아니다.지금까지의 반성과 함께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해야만 한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여건으로 과거 우리의 해외교류란 대부분 中.日에 편향된 것이 고작이었다.朝鮮말엽 西洋세력이 문호개방을 요구하며 접근했을때 쇄국정책으로 고립을 자초하다결국 日本에 나라를 빼앗긴 아픔을 겪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벌써 그 당시『독불장군 따로 없다』는 교훈을 호되게 배운 셈이다.그러나 해방후에는 지나친 對美 편중으로 숭늉.곰방대등으로 대표되던 우리 기호마저 커피.껌.콜라 같은 소위「양키이즘」으로 변질되고 말았다.바람직한 문화융합 대신 맹목적종속만 가중된 것이다.
21세기가 성큼 곁에 다가오며 언어.민족.역사적 배경이 제각각인 西歐제국들은 유럽연합(EU)이라는 공동체를 결성,유럽을 하나로 묶은데 이어 궁극적으로 단일통화까지 추진하고 있다.올해정월초하루에는 北美자유무역협정(NAFTA)이 공 식 발효됨으로써 北아메리카 대륙도 하나의 권역으로 통합됐다.
초창기 동참을 거부했거나 소외됐던 국가들은 서로 막차를 잡아타려 아우성이다.본격적인「지구촌 한가족」시대의 도래를 실감할 수 있다.
올림픽까지 치른 우리의 실정은 어떠한가.말로는 국제화를 외치면서도 막상 南美.東유럽.中東등 날로 중요성이 높아가는 지역의말.문화 이해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지역전문가 한명 찾기 어려운 참담한 현실이다.양놈.검둥이.쪽발이.멕짱구. 로스케.되놈….다양한 인종차별적 언사에서 보듯「외국인기피증」이 유달리 심하기 때문일까.심지어 大韓民國 최고 엘리트가 몰려 있다는 외무부내에 해당국 언어는커녕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외교관이 있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美.日.獨.佛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 해외각국에 문화원을 두고 주요 대학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自國문화 수출에 심혈을 기울여왔다.우리와 비교적 소원한 관계인 스페인 정부도 이번 학기부터 外大에 기존의 공식 스페인語(카스테야노語)외에 바르셀로나 方言인「카탈란」강좌까지 추가,신설했을정도다. 이에 비해 우리의 노력은 안팎으로 아직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국제화란 결코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요란하게외친다고 이뤄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바깥문물을 어떻게「우리것」과 접목시켜「우리式」으로 소화하느냐는 것이다.한세기가 바뀌려하고 하루가 달리 세상이 격변하는 이때 말만 요란한「껍데기 국제화」에 앞서 일찍부터 다양한 외국어.지역학문을 접할수 있는 제도개선등 실질적 환경조성이 시급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