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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영화 승패 가르는 CG의 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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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개봉 한 달 만에 820만 명의 관객을 모은 화제의 영화 디워(D-war). 이 영화에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장면이 몇 개 있다. 사악한 이무기인 브라퀴가 여의주를 찾아 미국 LA 리버티 빌딩을 타고 오르는 것과 선한 이무기가 브라퀴를 물리치고 용으로 승천하는 모습은 디워의 백미다. 브라퀴와 용은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동물이지만 컴퓨터 그래픽(CG)기술은 이를 얼마든지 만들어낸다. 최근 영화팬들은 이 같은 창작물(크리처.creature)에 환호하며 영화관을 찾는다. 디워의 제작업체인 영구아트 김민구 조감독은 "기존 영화에 식상한 팬들은 현실세계에선 도저히 볼 수 없는 스펙터클(경이롭고 신기한)한 장면을 원한다"며 "디워 영화에서 한 대당 600억원이 넘는 아파치 헬기가 추락해 폭발하는 장면을 진짜 헬기로 촬영하려면 수천억원을 들여도 모자랄 것이지만 CG는 이런 고민을 해결해준다"고 말했다.

이같이 CG는 영화 흥행의 열쇠를 쥘 만큼 그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편당 수천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는 CG작업에 전체 영화제작비의 30%가량을 쏟아부을 정도로 공을 들인다. CG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 주고 영화제작 기법의 지평을 넓혀 주기 때문이다.

◆영화의 CG비용은 얼마나 될까=영구아트 측은 "디워는 괴물보다 CG작업 비용을 더 많이 썼다"고만 밝혔다. 전문가들은 괴물(CG 비용 50억원)에 비해 크리처가 많이 나온 디워의 CG 비용은 전체 영화 제작비의 3분의 1수준인 1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을 CG에 투입한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인 3억 달러를 들인 '스파이더맨3'는 CG비용으로 1억 달러(약 930억원)를 쏟아 부었다. 이는 1인당 2000만~3000만 달러 수준인 할리우드 톱스타의 캐스팅 비용보다 훨씬 많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1년에 10개만 나와도 영화용 CG 시장은 연간 최소 5억 달러가 넘을 것이란 게 CG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국내 CG손재주는 세계수준=디워는 거의 국내 CG 인력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만큼 CG기술의 독립 가능성을 보여 준 작품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기술과 자본을 지원받아 설립된 매크로그래프의 이인호 대표는 "우리 CG 기술로 만든 디워가 미국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1970년대 포니를 미국에 첫 수출한 것만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CG는 우리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세계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분야다. CG로 만든 캐릭터가 실제 배우처럼 연기하도록 하는 기술(디지털액터)을 가진 매크로그래프는 최근 할리우드 영화 '포비든 킹덤'의 CG 작업을 수주했다. 청룽(成龍)이 주연으로 나오는 이 영화는 내년 가을 개봉을 목표로 제작 중이다. 국내 대표적 CG업체의 하나인 모팩스튜디오의 장성호 대표는 "CG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장면을 연출하는 손재주는 우리나라가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화 '스타워즈'나 '캐리비안의 해적' 등의 CG를 만든 ILM사 등에 일하는 한국인 인재도 적잖다.

◆SW개발이 과제=반지의 제왕 CG를 만든 뉴질랜드의 웨타 디지털은 10만 개의 캐릭터가 얽혀 싸우게 하는 '매시브' 기술을 갖고 있다. 적군을 만나면 싸우고 칼에 찔리면 쓰러지는 동작은 모두 SW로 구현된 것이다. 웨타 디지털은 이런 복잡한 작업을 처리하기 위해 수퍼 컴퓨터 4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여건은 썩 좋지 않다. 국내 영화 시장 규모가 작은 탓에 CG 인력은 일감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을 반복한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CG 업체처럼 작업을 하면서 기술을 축적할 여력이 없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ETRI 등 몇 곳이 CG 원천기술을 개발 중이다. ETRI는 지난달 초 흐르는 물을 표현하는 CG 기술을 개발하는 등 우리나라 CG소프트웨어 개발 수준을 한 단계 올려 놓았다.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박진완 교수는 "영화는 물론 게임.광고제작에 두루 쓰이는 '무공해 산업' CG 분야를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꼽아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컴퓨터 그래픽(CG)=컴퓨터를 이용해 도형이나 화상을 그리는 작업. 1963년 미국 MIT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한 학생의 논문에서 CG란 개념이 처음 소개됐다. 그 후 컴퓨터로 2차원 화면에서 3차원의 물체(건물.상품 등)를 표현하거나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우주나 원자의 구조 등을 그리는 기술로 발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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