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석방 과정 김만복 국정원장 과잉 노출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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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김만복 국정원장(右)이 지난달 31일 2차로 풀려난 7명의 피랍자 가운데 두 명(中)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②1일 오후 두바이의 두짓 두바이 호텔에서 석방 인질들이 두바이 공항으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현지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③이날 오후 두바이에서 인천으로 가는 대한항공 KE952편에서 동승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④2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입국장에서 석방 인질들이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국정원 제공, 연합뉴스, 정재홍.조용철 기자]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아프가니스탄 카불 등에서 벌인 지나친 공개 활동과 업적 홍보가 논란이 되고 있다. 김 원장은 두바이의 호텔과 기내 등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등 여러 차례 외부에 신변을 노출했으며 자신의 활동을 공개했다.

국정원은 김 원장이 아프간 현지에서 탈레반 측과 한국인 인질 석방의 최종협상과 타결을 직접 진두지휘했다고 밝혔다. 1일 두바이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KE952편 기내 1등석 좌석에서 기자들과 회견한 뒤 돌린 보도자료에서다. 김 원장은 또 석방 인질들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이 담긴 콤팩트디스크(CD)도 직접 배포했다. 회견 자리에는 인질 석방 과정에서 활약했다는 국정원 요원이 선글라스를 쓴 채 배석했다.

그동안 정부는 테러단체와의 협상이 국제사회의 원칙과 어긋난다는 이유로 '협상' 대신 '접촉'이란 용어를 써 왔지만 김 원장은 회견과 보도자료에서 이를 '협상'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테러집단인 탈레반과 협상했다고 인정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대목이다.

보도자료는 나아가 "김 원장이 '국민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며 안전을 우려하는 국정원 간부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아프간으로 출국했다"며 "아프간 활동 중 방탄복을 입을 정도로 위험을 무릅썼다"는 홍보성 설명도 담았다. 현지 협상팀 관계자의 말이라며 "탈레반이 '인질-수감자 맞교환' 요구를 굽히지 않은 채 추가 살해를 협박하는 절박한 상항에서 김 원장의 34년 정보요원 경륜과 현장 감각은 빛을 발했다"는 자화자찬성 코멘트도 실었다.

김 원장은 지난달 31일에는 두짓 두바이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지 통신시설이 미비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신속히 대처할 수 없고 감청의 위험이 있어 아프간에 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비록 인질 구출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국가 정보기관의 최고 책임자가 여러 차례 신변을 드러낸 것은 비밀과 보안을 철칙으로 하는 정보 분야의 관례상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는 또 인질 석방을 위한 몸값 지불과 관련해서도 명확하지 못한 설명으로 의혹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그는 기내 회견에서 "거액의 몸값을 지급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탈레반도 몸값을 받지 않았다고 하지 않느냐. 그건 아마 잘못된 보도일 것이다. 그렇게 내가 얘기를 드릴 수 있다"고 답변했다. 몸값 질문이 이어지자 "협상 내용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며 "국정원은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는 게 원칙"이라며 회견을 끝냈다. 딱 부러지게 몸값을 준 적이 없다고 강조하지 않아 관련 의혹을 불식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익명성과 특정 사안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모호성은 정보기관의 철칙이다. 그런 점에서 김 원장의 공개 행보와 업적 홍보는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또 국내외에서 언론에 잇따라 업적 홍보를 한 것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정보기관의 원칙에도 어긋날 수 있다는 평가다.

한편 김 원장이 2일 인천공항에서 석방 인질들이 탄 버스를 배웅한 것과 관련, 일부에서 그가 절을 했다는 말이 돌자 국정원 측에서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손을 흔들어 인사만 했다"고 해명했다.

정재홍.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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