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설 민심- "부패정치는 매장시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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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설 연휴의 화두는 단연 경제회복과 정치개혁이었다. 서민들은 당장의 생활고뿐 아니라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청년실업의 여파를 걱정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도 이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정치권이 각종 비리로 만신창이가 되는 현실에 절망감을 표시했다. 당장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로 시름을 앓는 서민들이 정치인들을 걱정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됐다.

요즘 서울구치소는 거물급 정치인.기업인들을 일컫는 '범털'들로 초만원이라고 한다. 국회의원만도 8명이고, 고위 공직자와 재계 총수까지 포함하면 30명을 넘는다. 나라의 현재를 책임지고 미래를 설계해야 할 주역인 이들의 혐의가 대부분 불법 정치자금의 조달과 수수라니 당장 도려내야 할 환부가 어디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문제는 이번 4월 총선에서도 검은돈의 망령이 가셔지지 않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지역에선 벌써부터 관광.회식 등 예의 돈선거.조직선거가 교묘히 이뤄지고 있다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과 기업이 망국적 공생관계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하는 정치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정치개혁이 안 되는 이유는 관련법이 없어서가 아니다. 법도 있고 처벌규정도 가볍지 않지만 실제론 너무 허술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현실이 바로 걸림돌이다. 그 때문에 법을 무서워하지 않는 풍조가 형성됐다. 부패 정치인들이 선관위와 검찰에 의해 적발돼도 법원의 재판은 더디기만 하다. 더 나아가 법원이 늦게나마 실형을 선고하더라도 범법 정치인은 얼마 가지 않아 정부의 사면.복권 조치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지각 판결-사면이 지금까지의 선거사범 처리 패턴이다.

이래 가지곤 정치개혁은 백년하청이다.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우선 선거사범에 대해서는 법원이 신속히 재판해 엄단해야 한다. 지금처럼 불법이 적발되고도 2~3년간 버젓이 의원 배지를 달고 다니는 눈꼴사나운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사면.복권도 극히 제한적으로, 엄격히 실시함으로써 부패정치의 실질적 '매장'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설 민심도 바로 그 점을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