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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도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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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16면

오은선(왼쪽)ㆍ고미영씨가 8월 28일 모처럼 만나 북한산 사모바위를 오르고 있다. 우람한 바위를 타고 넘으면서도 두 사람은 정원을 거니는 듯 여유와 즐거움이 넘쳤다. [신인섭 기자]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산악인 오은선(42·수원대 OB), 고미영(41·코오롱스포츠 챌린지팀)씨. 14개 봉우리 중 각각 5개와 3개를 마친 이들을 두고 ‘14좌 경쟁’ 운운은 조금 성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은선씨가 올해 봄 초오유(8201m)와 K2(8611m)를 연속으로 등정하고, 같은 기간 고미영씨가 에베레스트(8848m)와 브로드피크(8047m)를 잇따라 오른 점을 감안하면 본격 레이스가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40대 두 여걸의 ‘巨峯 레이스’

한국 여성이 세계 여성 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할 수 있을까? 조금 늦었을지 모른다. 현재 오스트리아 여성 산악인 겔린데 칼텐부르너(37·오스트리아)가 10개 좌를 올라 가장 앞서 있다. 하지만 14좌 노멀 루트 중 가장 어렵다는 K2를 남겨두고 있다. 오은선씨는 이제 5개 봉에 올랐지만 K2를 돌파했다는 점에서 ‘최초 완등’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전까지 저는 아마추어였다고 생각해요. 먼저 스폰서, 돈을 구하는 일을 스스로 해본 적이 없거든요. 이젠 확실한 목표를 위해 달리는 프로페셔널이 된 거죠.”

2006년 스포츠 클라이밍에서 고산 등반으로 전업한 고미영씨의 히말라야 14좌 필모그래피는 불과 3개. 그러나 제반 조건은 오은선씨보다 앞서 있다. 스폰서인 코오롱스포츠 측에서 14좌 완등 경비를 이미 책정해놓고 있으며, 고산 등반 전문가 김재수씨가 매번 동행해 정상 서미트를 돕는다. 1분당 심장박동수 49회에서 알 수 있듯 강건한 체력이 장점이다.

고미영씨는 올해의 마지막 목표 시샤팡마(8027m)를 향해 9월 6일 티베트로 떠난다.

“베이스캠프에서 너무 잘 먹고 잘 잔다”며 올해만 벌써 세 번째 8000m로 향하는 길을 소풍 가는 것처럼 말한다.

두 사람을 나란히 앉혀놓고 “옆에 있는 경쟁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는다면 당사자들은 참 곤란할 것 같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두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지만 색깔은 분명 달라요. 선의의 경쟁, 아름다운 경쟁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얘기해도 주위에서는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겠죠? 사실 사람들이 ‘이제 5개, 3개 해놓고 14좌 완등 경쟁이냐’고 할까 봐, 그게 제일 부담돼요.”

히말라야에 대한 색깔이 다르다? 흰 설원 위에 펼쳐지는 40대 초반 두 여성 산악인의 꿈, 어떻게 다른 것일까? 오은선씨는 그 꿈을 히말라야 만년설에 대한 동경이라고 말한다.

“대학 산악부 1학년 때 다들 암벽을 타는데 저는 선배들 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어요. 저는 그냥 걷는 산행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욕심이 생긴 게 사실이지만,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했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오은선)

“스물세 살 평범한 직장인에서 스포츠 클라이머로, 다시 마흔 살 넘어 고산 등반에 도전하는 제 삶이 즐겁습니다. 히말라야 14좌도 마지막까지 완등만 한다면 ‘누가 가장 먼저 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완등이 1등이죠.”(고미영)

집안의 맏이로서 책임감과 리더십이 몸에 밴 오은선씨는 매사 명쾌한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성격이 내성적인 그녀는 고미영씨의 명랑·쾌활함이 늘 부럽다.

“고미영씨는 남자 산악인하고도 너무 잘 지내고, 누구하고든 금방 친해지더라고요. 저는 그런 것 잘 못하거든요.”

아버지를 닮아 양주 한두 병쯤은 거뜬히 해치운다는 고미영씨는 스포츠 클라이밍으로 다져진 근육과 넓은 어깨가 그의 성격을 대변한다. 전장에 나선 장수를 보는 듯한 호탕한 성격에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낙천주의자다.

“오은선씨는 여자라는 핸디캡에 고정적인 스폰서도 없는 실정인데, 그런 난관을 헤치고 히말라야 원정을 꾸리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해요.”

66년생인 오은선씨가 고미영씨보다 한 살 많지만, 고미영씨가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 둘은 동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작 산에서는 자주 마주치지 않았다. 오은선씨는 수원대 85학번으로 대학산악연맹을 통해 남자들과 부대끼며 산을 타오다 2005년 한국 여성 최초로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한 뒤 본격적인 고산 등반에 뛰어들었다.

반면 고미영씨는 23살까지 산을 몰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우연히 암벽등반을 접한 뒤 스포츠 클라이밍의 세계에 눈을 떴고, 97년부터 아시아선수권을 제패하면서 스포츠 클라이밍의 기린아로 등장했다. 고미영씨는 “아직 뚜렷한 등반스타일은 없다. 14좌를 함께하기로 한 김재수 대장이 하자는 대로 하는 편이다. 고산에서 일기 변화를 읽는 눈과 감각이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다.

반면 오은선씨는 지난해부터 원정대장으로 나섰다.

“원정대 규모를 작게 꾸리고, 최대한 빨리 치고 올라가는 게 제 등반 스타일이죠. 정상 공격을 할 때는 항상 ‘내가 저기를 살아서 내려올 수 있을까?’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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