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주말을] 하느님이 죽었다? 죄많은 우리는 어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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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하느님 끌기
제임스 모로 지음
김보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556쪽, 1만3800원

    이 소설, 다분히 발칙하고 불경스럽다. 환상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감안해 황당함은 접고 넘어가더라도 하느님의 죽음을 소재로 택한 지은이의 발상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책의 곳곳에 영리하게 자리를 잡은 신과 종교,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은 단순한 판타지 소설의 범주를 벗어난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두 명의 남자가 있다. 한 명은 기름 유출 사고 때문에 대형 유조선 선장직에서 물러난 앤서니 반 호른. 뉴욕에서 살고 있는 그에게 대천사 라파엘이 나타나 하느님이 이유 없이 죽어 바다 위에 떨어졌다며 그 주검을 북극에 마련해 둔 무덤까지 끌고 가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대천사들과 교황청은 또 한 사람, 예수회 사제로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토머스 오크햄 신부에게 하느님의 주검을 북극으로 옮기는 임무를 맡긴다. 하느님의 뇌가 죽기 전에 시신을 냉동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다. 소설은 하느님의 시신을 북극까지 예인할 임무를 안고 유조선 발파라이소호에 오른 이 두 남자와 하느님의 주검을 수장(水葬)시키려는 무신론자이자 페미니스트, 인간의 본성에 충실한 선원들이 빚어내는 갖가지 해프닝을 그려내고 있다.

 하느님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선원들이 폭동을 일으켜 살인과 강간 등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장면에서는 죄를 벌할 존재가 사라진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먹을 것이 동나 배고픔에 시달리던 이들이 연명을 하기 위해 하느님의 살을 뜯어내 만든 음식을 먹는 모습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떠오르게 한다. 물론 이 부분에서도 세계환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솜씨를 발휘해 토머스 신부가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라며 하느님의 살을 나눠 먹는 성체 성사 의식의 패러디를 연출한다.

 소설은 하느님의 죽음이라는 불경스러운 발상에도 신의 존재와 무관하게 이어지는 삶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종교적인 혹은 철학적인 고민뿐만 아니라 기발한 상상력을 만나기 위해서 책장을 펼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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