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의장 성명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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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엔안보리를 통한 북한제재 논의도 1년전과 같은 상황을 되풀이할 전망이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완벽한 사찰을 받도록 압박하는 방안으로 안보리 결의안 대신 의장성명을 채택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문제의 유엔안보리 회부 자체를 반대해온 중국이 제안해온 이 방안에 대해 우리 정부도 수용의사를 내비쳐 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 핵비확산조약 탈퇴를 선언한 이후의 궤적과 흡사한 길을 또다시 밟게 되는 셈이다. 이번에 중국이 제안한 것과 같은 형태의 의장 성명은 작년 4월8일 이루어졌고,한달뒤인 5월11일 안보리 결의가 있었다. 그뒤에 북한과 미국의 접촉이 시작되고 남북한 접촉도 재개됐다.
그러나 북한 핵의 투명성에 관한한 달라진 것이라곤 없다. 바뀐 것이 있다면 시간적으로 1년이 지났다는 사실외에 크게 두드러진 것은 없다. 다만 북한과 미국의 접촉이 이루어지고,이 문제의 유엔안보리 논의 자체를 반대하던 중국이 의장성명 채택을 제안,접근태도가 약간 바뀌었다는 정도다.
정말로 바뀌어야 할 북한은 아무런 변화도 없다. 우리 정부를 배제한 채 미국과 직접 협상을 벌이겠다는 그들의 철칙은 요지부동이다. 그런 가운데 북한은 「미국이 고위급회담에 응하면 IAEA의 추가사찰을 받겠다」고 운을 떼고 있다. 한반도 주변의 긴장분위기와 핵에 대한 위기감을 부추겨 남북한 관계는 부차적인 문제로 만들자는 속셈이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북한의 태도를 바꾸게 하기 위해서는 작년보다는 더욱 진전된 제재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유엔안보리의 단계적인 북한 제재방안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국제법적으로 강제력이 없는 의장 성명채택안이 제기되자 한승주 외무장관은 출국길에 공항에서 「중국 제안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 방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시기와 장소·방법 등이 적절했는지는 한번 짚어볼 일이다.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가 지나칠 정도로 「유화적」인 태도에 집착하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유화적인 정책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지금까지 우리가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또 새로운 제안이 나올 때는 외교전략적으로나 협상카드로서 신중하게 활용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된다해서 대뜸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항상 상대방에게 이끌려다니게 마련이다.
채찍론이라 해서 대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을 보다 효율적인 대화의 장으로 이끌기 위한 방안일 뿐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듯한 대화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는 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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