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새로운 기후문화를 창조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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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올해는 장마가 끝나고도 장마 때보다 더 많은 폭우가 내렸고, 뒤늦게 찾아온 무더위는 예년보다 맹위를 떨쳤다. 기상 오보를 남발한 기상청은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이 같은 기상 이변은 기후 변화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지구 온난화 문제가 이제는 우리 국민 대다수가 염려하는 현실적 이슈가 된 것이다.

며칠 전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을 시장 기능으로 조절하는 ‘탄소 배출권 시장’ 개설이 포함된 ‘기후 변화 대응 신국가전략’을 확정했다. 그간 산업계의 입장을 고려해 정부가 등록·관리해 온 50건의 이산화탄소 배출 사업을 토대로 연말부터 탄소 배출권 국내 거래를 시작한다는 게 골자다. 아울러 지속적인 온실가스 감축 노력의 일환으로 전체 에너지 사용량 가운데 현재 2%대에 불과한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9% 수준으로 늘리고, 석유의존도를 35%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일단은 환영할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정부가 취해 온 기후 변화 및 에너지 문제에 대한 자세나 노력에 비춰볼 때 이번 조치 역시 그다지 큰 기대가 가지 않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우선 배출권 시장 개설은 우리끼리 리그를 만들어 연습해 보자는 것에 불과하다. 취지는 좋으나 실무적으로 진행하면 되는 것이지 대통령 앞에서 논의하고 떠들기엔 좀 쑥스러운 주제란 느낌이다. 더구나 신재생 에너지 9% 얘기는 이미 여러 차례 발표됐던 다소 구체성이 모호한 비전이라는 점에서 더욱 신선미가 떨어진다. 기후 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국가전략이 좀처럼 글로벌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흔히들 기후 변화에 대한 접근 방법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온실가스 저감(mitigation), 기후 변화에 대한 적응(adaptation) 그리고 기후변화협약에 관련된 협상(negotiation)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나 기업은 저감과 협상에만 모든 관심을 쏟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국민, 나아가 지구상의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날로 이상해지고 있는 기후조건에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다. 이는 곧 새로운 산업의 영역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우리 기업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대목인 것이다.

한 예로 일본에서 유래한 ‘쿨 비즈(Cool Biz)’ 운동을 보자. 날로 뜨거워지는 여름철을 견뎌내면서 에너지를 절약하고자 넥타이라도 풀고 살자는 그들의 생각이 이제는 여름철 생활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그 결과 나타난 새로운 사업이 바로 ‘쿨 비즈 패션’이다.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후줄근하게 보이던 기존의 셔츠 대신 맵시 있게 디자인한 쿨 비즈 셔츠가 일본 남성들의 여름철 복장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 운동이 전해지긴 했지만 그다지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패션 업계가 이런 시장 기회를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패션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다.

기후는 문화를 낳고, 문화는 비즈니스를 낳는다. 이제 우리도 새로운 기후문화(climate culture)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된 것이다. 유사 이래 큰 역사의 흐름은 대부분 사람보다 자연환경에 의해 주도돼 왔다. 기후 변화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예측해 적절히 적응해 나갈 수 있는 문화를 창출하는 일은 분명 시급한 과제다.

그리고 이런 노력의 결과가 바로 우리의 신성장 동력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지속가능 발전의 길이 될 것이다. 최근 유럽에서 불기 시작한 제3차 산업혁명의 바람은 환경과 경제의 통합을 본질로 삼고 있다. 바로 그 근원이 온실가스 과다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를 극복하는 데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병욱 세종대 교수·한국환경경영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