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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위조는 무덤, 되레 평범한 학력이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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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예인들을 둘러싼 허위 학력 의혹 사건에는 판에 박은 듯한 대사들이 등장한다. ‘입학은 했지만 졸업을 못했다’‘주변 인물들이 인터넷 인물 정보 관리를 소홀히 했다’ 등이다. 그보다 더한 클리셰(cliche)도 있다. ‘내 연예 활동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학력을 속이겠느냐’는 진술이다. 22일 한국외국어대 졸업 여부가 논란이 된 탤런트 최수종은 소속사를 통해 배포한 해명 자료에서 “학력으로 이득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대학을 졸업했다는 내용을 기재하거나 말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이라고 알려졌던 방송인 강석은 “개그맨인 내가 무슨 득이 있다고 학력을 사칭하겠는가”라고 항변했다. 의혹을 받았던 연예인들 대부분이 사적으로는 비슷한 정서를 드러냈다. 연예 활동에 학력 프리미엄은 없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영화배우 김태희가 서울대 출신이 아니었어도 데뷔 초기부터 그렇게 화제가 됐을까?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다. 고학력 연예인은 더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최근 서강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신인 탤런트 고주원은 ‘고교 시절 전국 인문계 석차가 상위 1%에 속했다’는 말 한 마디로 화제를 모았다. 연예인의 학력과 성적이 본업을 압도한 좋은 예다. 타블로나 김정훈·이하늬 모두 학력 프리미엄의 수혜자들이다. 서경석·이적·성시경도 마찬가지다.

연예계 학력 프리미엄의 역사는 길다. 1957년 가수 최희준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라는 학력 덕분에 단숨에 가요계의 황태자로 등극했다. 1960년대 초부터 가요계에 자신의 사단을 일궈낸 작곡가 길옥윤 역시 서울대 치의예과 출신이라는 후광 덕을 봤다. 70·80년대에도 가수 김상희, 영화배우 유지인 등이 학력 프리미엄을 누렸다.

연예계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직장 생활에서도 학력의 매력은 크다. 심지어 업무 능력보다 더 중요한 성공 요인일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온라인 취업 전문업체 잡코리아가 직장인 123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직장인으로 성공하기 위한 첫째 조건으로 학벌(22.4%)을 꼽았다. 외모와 경제적 뒷받침이 그 뒤를 이었다. 지적 능력이 요구되고, 경쟁이 치열한 분야일수록 학력 프리미엄은 더 커진다. 지난해 9월 중앙인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우리 정부의 고위 공무원(1~3급) 1천3백3명 가운데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속칭 스카이(SKY) 출신은 41%나 됐다.

그러나 직장인들에게 명문대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프리미엄이 아니라 디스카운트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일을 잘하면 당연하다고 여기고, 못하면 공부도 많이 했으면서 그 정도밖에 안 되느냐는 힐난을 듣기 일쑤다. 직장 생활에서 엄연한 이 사실은 종종 간과된다. 심지어 학력과 업무 능력의 상관관계가 크게 떨어지는 연예계조차 비슷한 학력 디스카운트가 존재한다. 김태희는 “(서울대 졸업) 이력은 언제나 내게 짐이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재연 배우 유지연은 서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뒤늦게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학교 선배들에게 ‘서울대 출신이 꼭 재연 배우를 해야겠느냐’는 핀잔을 들었노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좋은 학력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경우다.

◇학력 프리미엄과 디스카운트

90년대의 문화 아이콘인 서태지는 성공 이후 최종 학력이 중졸이라는 사실이 부각돼 더욱 높게 평가받았다. 서울북공업고등학교 출신인 그는 자신의 학력에 대해 ‘대학에 가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느꼈다’고 털어 놓은 적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보다 빨리 하기 위해 학력을 포기한 것이 오히려 효과적인 선택으로 여겨졌다. 직장 생활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좋지 않은 학력이 오히려 관심을 끄는 경우다. 최근 대졸 취업난의 영향으로 신입 사원의 학력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런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해 말 대기업에 공채로 입사한 한 직장인은 “유일하게 지방대를 졸업한 입사 동기의 일거수 일투족에 아직까지도 회사 전체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당사자가 능력을 입증해 보인다면, 관심은 보상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저학력 프리미엄이다.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최근 연예인 허위 학력 의혹 소동에서 배울 점은 이것이다. 아무리 학력이 중시되는 직장이라도 허위 학력을 대지 마라. 학력을 속이는 것은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다. 연예계에서는 몰라도 기업의 검증 시스템을 통과할 수는 없다. 일단 기업들 사이에서 사기꾼으로 치부되면 이 평판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반대로 자신의 학력이 좋다면? 빨리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일에 정진하라. 요즘 좋은 학력은 자산이 아니라 부채일 뿐이다. 만일 학력이 나쁘더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당당하게 밝히되 자신에게 쏟아질 스포트라이트를 감당해낼 준비를 해야 한다. 일에서건, 외모나 성격에서건 고학력자들 사이에서 두드러질 수만 있다면 오히려 짧은 가방끈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서라벌고를 중퇴한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도 그랬잖은가? “사람들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다고 나를 한 단계 낮춰 봤다. 그럴수록 나는 음악에만 몰두했다. 그게 당연한 거다. 그 방법밖에 더 있겠나?”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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