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직 인선서 선보일 '이명박 용인술'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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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발표는 없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26일 늦은 밤 귀갓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후보 비서실장 등 당직 개편 방향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며칠째 똑같은 대답이다. 지난 주말까지 끝내겠다던 비서실장 등 인사가 이번 주 초로 밀린 것이다.

사람을 고를 때 최후의 순간까지 고심하고 또 고심하는 스타일이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비서실장엔 재선의 임태희(경기 성남 분당을) 의원, 3선의 권오을(경북 안동)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3선의 남경필(수원 팔달) 의원도 오르내린다. 측근이 기용될 것으로 보이는 사무총장엔 이방호(경남 사천).안경률(부산 해운대-기장을) 의원이 유력하다.

캠프 대변인을 지낸 박형준(부산 수영) 의원이 당 부설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으로 갈 것이란 얘기도 있고, 캠프 비서실장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의 대변인 기용설도 돌고 있다.

"인사엔 불도저가 아니라 거북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이 후보의 인사 결단은 늦은 편이다.

올 6월 경선 선대위가 출범할 때는 첫 인사안이 나온 뒤 두 달 넘는 시간이 걸렸다. "적합한 인물이 아니면 차라리 공석 (空席)이 낫다"는 이 후보의 지론 때문이다. 앞으로 한나라당을 '이명박당'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수많은 인사를 앞두고 이 후보의 인사.용인 스타일이 주목받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26일 공식 일정 없이 가족과 식사하거나 지인들과 테니스를 치는 등 개인적인 여가 시간을 보냈다. 1년여 만이라고 한다. 이날 이 후보가 사는 가회동 한옥 주변은 한적했다. [사진=김태성 기자]

◆선택까지는 거북이, 한번 찍으면 불도저=사람을 선택할 때는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지만 일단 찍으면 일사천리다. 정치판에서 선거 전략가로 통하던 권택기씨는 휴일 골프장에서 생애 최고의 스코어를 앞둔 17번 홀에서 호출을 당해 이명박 캠프의 기획단장이 됐다. 안국동 개인 사무실 밑 다방에서 만나 "사무실로 같이 올라가자"고 밀어붙이는 이 후보 앞에서 권씨는 찍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이명박 맨'이 됐다.

서울시장 경선전을 앞둔 2001년엔 교통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던 정두언 의원을 찾아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고, 퇴원 직후 부부동반 만찬으로 정 의원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일단 뽑으면 끝없는 경쟁=일단 뽑으면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는다. "보고서 한번 올려봐"라는 그 흔한 지시 한번 받지 못해 당황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날 왜 데려왔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방목해 놓고, 스스로 일을 찾게 하는 처절한 생존 시스템이다. 욕심 나는 사람을 뽑아 놓고는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식이다.

박희태 위원장과 3선급 선대위 부위원장을 모두 모아놓고도 말석(末席)에 앉은 30대 초반의 실무자가 내민 아이디어를 채택하는 실적 중시형 리더십이기도 하다. 충성심보다 성과를 보이라는 스타일이다.

신상필벌이 확실한 용인술은 22일 캠프 해단식에서도 나타났다.

이 후보는 "교수로서 이렇게 현장 감각이 뛰어난 분은 드물다"며 김대식(부산 동서대 교수) 캠프 대외협력단장을 칭찬했다. 두루뭉술하지 않은 구체적인 칭찬법을 놓고는 CEO형 리더십이란 얘기가 나온다.

서승욱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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