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최고 인재가 외면하는 한국 대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사실 이번 사태는 한 명도 못 뽑았다는 점이 충격적이어서 언론의 관심을 끌었지만, 이미 수년 전부터 서울대에서 교수 채용에 실패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었다. 자연과학대도 지난 학기에 세 명의 채용 공고를 냈지만 한 명밖에 못 뽑았고, 그 이전에도 이 같은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면 왜 요즘 와서 서울대 교수 자리를 채우기가 어려워진 것일까. 우선 과거보다 채용 기준이 높아진 점을 생각할 수 있다. 대학이 세계적 경쟁력을 생각하다 보니 교수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능력을 요구하게 되고, 따라서 자연히 채용 기준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특히 외국과 직접 비교가 가능한 이공계 분야에서는 세계적 대학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경력과 연구력을 갖춘 사람을 뽑고 싶어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자격을 갖춘 최고급 인재들에게는 한국 대학들이 전혀 매력적인 직장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표적 대학도 연구 여건이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지고, 자녀 교육이나 다른 경제·사회적 조건도 별로 좋지 못하다. 게다가 과거 우리나라 대학들이 자랑했던 ‘우수한 학생’마저 이제는 이공계 기피 현상과 조기 유학으로 많이 빠져나가 특별한 강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애국심이나 혈연관계 이외에는 굳이 귀국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우수한 인재들이 한국의 대표적 대학마저 외면하게 되면서 한국 대학 교육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조기 유학으로 우수 학생들을 외국 대학에 빼앗기고 있었는데, 이제는 교수진마저 구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사람이 유일한 자산인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과 교수 없이는 좋은 교육도, 탁월한 연구 성과도 얻기 어려운 것은 불문가지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지식의 창출과 전수가 이루어지는 대학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데, 우리나라 대학이 최고급 인재들에게 외면당함으로써 점점 경쟁력을 잃어 가는 것은 큰 문제다. 우수한 인재를 자력으로 양성하지 못하는 국가가 어찌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사정이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된 책임을 묻자면 지나치게 평준화 위주로 교육정책을 몰고 간 정부, 세계적 흐름에 둔감했던 교육계 등 여러 요인을 거론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일차적 책임은 대학에 있고 그 해결책도 대학이 주도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우선 최고급 연구 인력이 신명 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대학의 제도와 문화에서 평등주의를 과감히 탈피하고 업적과 능력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할 것이다. 또한 적극적으로 인재를 찾아나서는 태도가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학장이나 학과장의 큰 역할 중 하나가 학회에 나가 유망한 젊은 학자를 찾아보는 일이라고 한다. 최고급 인재를 얻기 위해 특채 제도를 도입하는 등 대학 측에서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학생 교육에도 지금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소위 일류 대학들은 그동안 쉽게 좋은 학생들을 뽑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학생 선발과 교육에 신경을 덜 썼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에 국내 일류 대학의 브랜드만으로는 외국 대학과 경쟁하기 어렵기에, 이제는 교육의 질로 승부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우수 학생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으므로 우리 대학들도 하루빨리 교육의 질을 높여 최우수 인재들이 국내 대학으로 발길을 돌리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대학과 국가는 영원히 일류로 도약하지 못할 것이다.

오세정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