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후보 이명박 그의 용인술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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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지금의 정치지형을 감안하면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가는 한 고비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12월 19일)는 4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그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앞으로 누구를, 어떻게 쓰느냐에 좌우될 수 있다. 그의 용인술(用人術) 관찰이 필요한 이유다. 강만수 전 재경원 차관은 이 후보를 “경험적 실용주의자”라고 표현했다. 중소기업을 세계 굴지의 대기업으로 만든, 현대건설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오랜 경험이 그의 용인술 출발점이다. 기업가는 본능적으로 최고의 성과물을 원한다. 향상된 제품이 나왔다고 만족하는 법이 없다. 끝없는 개선을 요구한다. 이 후보 선거캠프 관계자는 “최후의 일각까지 최선을 다해 고치고 바꾼다”고 말했다. 통일안보 공약인 ‘MB독트린’을 만들 때다. 그는 고려대 현인택 교수, 성균관대 김태효 교수 등 관련 팀을 17차례 만났다. 어지간한 사람은 버티지 못한다. 그는 TV토론 준비 때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2시까지 회의를 하곤 했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몇 시간 전 회의의 정리된 결과물을 읽었다. 회의 참석자들은 밤을 새우다시피 해야 했다. 사람들은 그를 “참 징한 양반”이라고 불렀다.   “중요한 건 성과”… 신뢰해야 불만 표출 강 전 차관은 이 후보의 용인술 특징을 “끝없는 경쟁”으로 정리했다. 이 후보는 참모들을 경쟁시킨다. 이 후보의 연설문은 대개 네 사람이 쓴다. 유우익 국제정책연구원(GSI) 원장, 신재민 전 주간조선 편집장, 박형준 의원, 전여옥 의원이다. 이 후보는 그 네 개의 연설문을 놓고 ‘베스트’를 고른다. 때론 다 물리치고 본인이 구술한다. 지난해 10월 안국포럼에선 ‘왜 MB인가’라는 내부 홍보책자가 만들어졌다. 네 가지 버전이었다. 합동연설회에 등장하는 후보 홍보 동영상도 한 곳에 맡기지 않았다. 내부 팀과 외부 팀을 가동시켜 그때그때 가장 좋은 것을 갖다 썼다. 캠프 관계자들은 “일을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다른 측면도 있다. 이 후보 선거캠프엔 칸막이가 명확하지 않다. 기획라인이 공보에 참여하고, 홍보라인이 정책 탐사에 동행한다. 무엇보다 이 후보 캠프에선 누군가 꿰차고 앉는 ‘불가침 분야’라는 것이 없다. 예컨대 한반도 대운하 팀이 이미 존재하지만 가장 좋은 논리와 계획을 들고 오면 그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된다.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찾아야 하고, 그러자면 걸맞은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이런 분위기는 이 후보의 엄청난 사람 욕심과 무관치 않다. 이 후보는 괜찮은 사람으로 평판이 난 사람은 기어코 곁에 두려 한다. 그러나 데려온 사람이 신통치 않을 수 있고 더 좋은 사람이 나중에 떠오를 수도 있다. 이 후보는 기존 인사를 내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시키거나 새로 사람을 데려온다. 결과적으론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사람들의 역할이 중첩되고, 갈등의 씨앗이 뿌려진다. 이 후보는 그중 잘하는 사람에게 계속 일을 시킨다. 캠프 안에서의 역할과 힘의 부침(浮沈)이 생긴다. 역설적으로 지금 이 후보와 멀어져도 또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이 후보가 일을 맡기지 않으면 그때가 이 후보에게서 멀어지는 시점이다. 캠프 관계자는 “이 후보는 신뢰하는 사람일수록 불만을 쏟아놓는다. 때론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혼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 용인술의 한계를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기업이나 공무원 사회처럼 질서와 역할이 명확한 곳을 이끌 때는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지만, 정치권처럼 지도자가 인재를 직접 리크루팅해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고 나가는 곳에선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후보의 이런 용인술은 치밀한 계산의 결과물일 수 있다. 그는 여의도 정치 경험이 짧다. 정치권에선 이해관계에 따라 누가 최고 선수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의 방법은 사람을 일단 데려다 놓은 뒤 경쟁을 통해 최후까지 실력을 검증하는 것이다. 실무진 중용해 간부들 긴장시켜

이 후보 선거캠프 회의의 특징 중 하나는 박희태 선거대책위원장부터 실무자까지 모두 참석하는 회의가 수시로 열린다는 것이었다. 네거티브 대응 회의가 한 사례다. 이 후보는 율사 의원들을 제쳐놓고 실무자인 30대 제승완씨의 보고를 받았다. 7, 8월 TV토론 준비 때다. 이 후보는 대뜸 “그 보좌관 어디 있어. 그 친구 똘똘하던데”라고 물었다. 그는 늘 해당 분야의 실력 좋은 의원 보좌관의 참석을 요구했다. 구체적인 수치와 관련 법안의 입법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시장 시절 이 후보는 간부회의 때도 과장과 관련 실무자들을 배석시켰다. 실·국장의 대답이 막히면 바로 팀장·과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답이 명쾌하면 계속 그 실무자를 찾았다. 조해진 전 서울시장 정무보좌관은 “7급, 9급 직원들을 바로 불러서 묻고 보고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실무자들은 시장이 자신을 신뢰한다고 생각하니까 신이 나서 책임감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다른 효과도 있다. 시장과의 대화에서 소외당한 실·국장들은 이를 악물었다. 잘못하는 것보다 일 않는 것 싫어해 “내가 아니었으면 그 사람이 그렇게 고통을 겪진 않았을 겁니다.” 이 후보는 울음을 삼키느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2006년 6월 서울시장 퇴임을 앞둔 이 후보가 3급 이상 간부들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한 자리에서였다. 그는 간부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거명하며 장점을 이야기했다. 그가 울먹이며 거론한 ‘그 사람’이란 수뢰 혐의로 수감돼 있던 양윤재 전 부시장이었다. 이 후보는 양 전 부시장이 청계천 복원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헌신을 신뢰했던 것이다. 서울시장 시절 이 후보는 2004년 7월의 서울 버스체계 개편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시청 앞에선 ‘이명박 시장 퇴진 국민서명운동’이 벌어졌다. 참모진은 버스체계 개편을 주도한 교통관리실장의 경질을 건의했다. 이 후보는 “그가 물러난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며 그 건의를 일축했다. 오히려 그에게 책임지고 사태를 수습하도록 힘을 실어줬다. 이 후보는 일을 하다가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괜찮지만 아무 일 하지 않는 사람은 싫어한다. 누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말로 비판하거나 이르는 것도 아주 싫어한다. 참모들은 이 후보에게서 “그러는(비판하는) 당신은 뭐 했어”란 말을 들을 때 새삼 긴장한다. 이상렬 기자 isang@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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