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불에 국가통신망 마비/구멍은 곳곳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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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하케이블 보안 무방비/사고땐 피해파악도 안돼/광케이블 화재사고 문제 뭔가
10일 오후 3시56분쯤 서울 도심 한복판 전화국 지하케이블에서 발생한 화재는 국가의 신경조직인 통신망의 허술한 관리를 드러낸 중대한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고는 통신시설의 양적인 확충을 따라가지 못한 방재체계에 큰 허점을 드러내 국가기간 통신망이 마비되는 최악의 사태를 맞게 한 사고다.<관계기사 2,3,22,23면>
관계자들은 우선 5백m 간격으로 설치돼 있는 지하케이블 유입통로가 단순히 자물쇠 하나만으로 보안을 유지하는 무방비상태라는 점을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누구든지 손쉽게 자물쇠를 절단하고 침입할 수 있을 정도다.
다음으로 케이블을 싸고 있는 피복재 문제다. 국내에서는 이 피복재가 단순히 절연차원에서만 고려돼 가연성물질인 폴리에틸렌(PE)이었다. 한국통신 운용보존실 김행웅부장(선로운용부)은 『이번 사고지역처럼 전국 거의 대부분이 화재에 취약한 기존 피복재로 조속한 대체나 보완이 요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은 계속 번지는대도 긴급상황때 접근이 안되는 통신망의 구조도 큰 문제다. 일정간격의 자동소화장치나 차폐시설을 갖추었더라도 혼란은 크게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사고원인은 물론 사고내용 및 피해범위마저 제대로 파악이 안되는 통신운영상의 허점이다. 전국의 통신시설 현황을 한눈에 자동으로 체크,보수해주는 시스팀이 없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직무유기다. 심지어 통신전문가 어디에 어떻게 설치됐는지 즉각적으로 파악도 못한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와함께 통신시설의 단선화문제다. 일부 주요 통신망의 경우 비상사태에 대비해 2중으로 하고 있으나 아직은 거의 대부분의 통신시설이 단선화돼 있다.
삼성전자 김상수부장(전송영업부)은 『외국의 경우 통신시설을 국가 최대의 보안시스팀으로 관리해 모든 통신시스팀을 2중으로 설치하는 것이 기본으로 한쪽의 통신선로에 장해가 생기면 바로 다른쪽의 통신선로가 자동으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84년 통신사고직후 일본은 95년말까지 4백여개소의 지하구와 전화국간의 경계에 방재벽을 설치하고 전케이블에 난연물질을 입혔으며 지하구내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동도관리시스팀」도 도입했다.
마지막으로 전국의 통신시설들을 한군데에서 일괄적으로 관리,운영하지 못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현재 전국에는 한국통신·데이콤 등 일반통신업체들과 한국전력·도로공사 등 자가통신업체들이 통신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들 통신시설이 재해발생때 국가적으로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돼 재해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통신의 한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통신시설은 너도나도 설치하고 있지만 이를 국가적으로 통합,운영하는 주체가 없어 오히려 중복투자가 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이원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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