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사회면>국익따라 바뀌는 美 인권잣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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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美國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北美자유무역협정(NAFTA)의 최대난관이던 下院표결을 앞두고 共和黨이 제기한 멕시코 人權문제로 큰 곤욕을 치렀다.당시 이 협정타결에 정치적 생명을 걸었던 클린턴은『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이 민주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필사적으로 해명,급한 불을 끄는데는 일단성공했다.
그러나 새해 첫날 숙원이던 NAFTA발효와 동시에 멕시코 최남단 치아파스州에서 생존권을 요구하는 사파티스타 인디오농민들의무장폭동으로 1백명 이상이 숨지는「날벼락」이 떨어졌다.
이후 중앙정부에서 파견한 정부軍이 사태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현지 양민을 집단 폭행하고 상당수가 행방불명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백악관은 지금까지『이번 참사를 계기로 멕시코 정부의인권신장 약속이 준수되길 기대한다』며 어느쪽이 가해자인지 조차밝히지않는 모호한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주요 경제파트너인 멕시코가 인권시비에 휘말릴 경우 행여 경기회복.고용창출등 장미빛 꿈을 실은 계획이 무산될까 우려한 탓이다.이는 80년 5월 우리나라에 보인 태도와도 흡사하다.
美정부는 자국민,특히 백인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民主모범생이지만 경쟁국.제3세계에는 利害 우선의 냉혹한 2중잣대를 휘두르는 야누스적 처신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멕시코의 인권문제엔 그렇게도 관대하던 美國이 中國에 대해서는무역최혜국(MFN)대우 연장을 미끼로「획기적인」인권개선을 요구하는등 온갖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의회까지 개입한 美정부의 적극적 반대로 지난해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몬테카를로 총회에서 北京올림픽 유치마저 저지당한 中國은『엉클 샘은 다름아닌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美國은 또 월남전 패배이후 20년 가까이 끌어온 對베트남 禁輸조치를 지난달 해제했다.修交와는 상관없다지만 자국 기업의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고려한 조치임은 물론이다.해제발표와 동시에코카.펩시 양대 콜라회사는 과거「원수의 나라」에 서 치열한 판매경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경제파탄에 이른 쿠바의 경우 피델 카스트로(66)의 관계정상화 애걸에도 불구,30년이상 단호한 금수가 지속되고 있는 실정.
美행정부 관리들은 이에 대해『혁명수출을 목표로 군사모험주의를자행하는 쿠바는 베트남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카스트로가 물러날 때까지 변화란 어림도 없다』는 엄포로 일관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에 대해 고작「월남전때 실종된 美軍 2천2백명의 유해조사」를 금수해제 조건으로 내걸었던 상황과 큰 대조가 아닐수 없다.
결국 연초 멕시코.베트남 등지에서 다시 한번 입증된 美國의 두 얼굴은「힘의 논리」만이 국제무대에서 행세한다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냉엄한 현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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