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취재일기

퍼주기도 기술인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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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녘 동포 돕기' 현수막을 단 트럭 행렬이 23일 오후 경기도 파주의 출입국사무소를 지나 북녘 땅으로 달려갔다. 화물칸에는 라면.담요.취사도구.생수 등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는 긴급 수해 구호물자가 실려 있었다.

정부는 105억원 상당을 지원할 계획을 세웠다. 앞으로 복구 장비, 식량 지원도 추가된다. 지난해 북한 수해 지원액(863억원)에 비춰보면 올해도 수백억원을 지원하게 되리라는 예상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가 전부다. 이 막대한 물자들이 과연 수재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배포 과정에 우리 측 공무원이나 적십자사 직원이 입회할 수도 없다. 지원에 앞선 수해지역 방문조사도 없었다. 지원액을 결정하려면 피해 규모를 알아야 하는데 우리 정부는 북한 당국의 발표를 고스란히 믿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에서 입회나 감시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국제 구호기구의 사례와 비교해보면 우리 정부가 알아서 기는 식으로 북한의 눈치를 보지 않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예를 보자. WFP는 북한에 이미 들여보낸 비상식량 5700t을 비롯해 3개월 동안 곡물.콩.기름.설탕 등 500만~600만 달러 상당을 긴급 지원한다고 21일 발표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이것들이 제대로 배분되는지를 WFP 요원이 현지에서 직접 감시한다는 것이다. 과거 WFP 요원들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던 지역에까지 모니터링을 하기로 했다. 이는 WFP와 북한 당국 간에 합의한 사항이다. 현장 실사도 이미 11개 군 지역에서 이뤄졌다.

WFP가 이런 조건을 단 이유는 자명하다. 북한에 보내는 인도 지원 물자가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국제사회에서 여러 차례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천재지변을 당한 동포를 돕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제사회까지 나선 마당에 적극적으로 북한을 도와야 할 주체는 다름 아닌 남녘 동포들이다. 하지만 지원에도 절차가 있고 원칙이 있는 법이다. 국민 세금으로 이뤄지는 대북 지원을 개인의 자선활동처럼 선심 쓰듯 할 수는 없다. 대북 지원의 절차와 사후 모니터링을 명확히 하지 못한다면 '퍼주기'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예영준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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