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잡기” 돈줄죄자 긴장/자금시장 왜 난기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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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해바라기성 통화정책에 문제점/자금 가수요일자 실세 금리 뛰어
최근의 금리 동향은 악순환의 조짐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채권 유통시장과 콜시장에서 시작된 금리의 오름세는 단자와 은행권으로 번져나가며 한동안 잠잠했던 고금리의 악몽이 다시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일으키고 있다.
최근의 자금시장 난기류는 정부의 잘못된 물가정책과 그 처방에서부터 비롯됐다.
연초부터 물가가 오르자 뭔가 노력을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졌고 늘 그래왔듯 돈줄을 죄기 시작했다. 물가정책을 총괄하는 경제기획원은 물가오름세가 『돈이 너무 많이 풀린 탓』이라며 통화관리를 강화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지난해 내내 여유 있게,특히 실명제(93년 8월)와 2단계 금리자유화(93년 11월) 이후 금리를 중시하면서 더욱 여유있게 통화관리를 해오던 한국은행은 속으로 불만이 있었지만 갑자기 통화관리의 파수꾼이 된듯이 통화 수속에 나섰다.
사실 과잉통과 문제는 그동안 여러차례 지적돼 왔다. 92년 하반기부터 뚝 떨어진 실질 경제성장에 비해 통화가 너무 많이 풀려 물가오름세에 나쁜 영향을 주리라는 우려였다. 더구나 지난해에는 실명제 충격을 줄이기 위해 더욱 많은 통화가 나간데다 실명제 직후 장롱 속에 숨었던 돈이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하면 더욱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따라서 정말 물가를 걱정했다면 은행 등 금융권이 남아도는 자금으로 주식을 사들이면서 주가가 뛴 지난해 말부터나,적어도 올 1월부터는 「소리나지 않게」 통화를 수속했어야 됐다. 그 때는 가만히 있다가 느닷없이 소리나게 죄니 자금시장이 충격을 받은 것이다.
결국 일관성없는 「해바라기성 통화관리 정책」이 자금의 가수요를 불러 일으키고 실세 금리를 올렸다. 이어서 단자사(기업어음)­시중은행(양도성 예금증서)­국책은행(채권 발행금리) 등 제도권 금융기관의 수신금리 인상을 가져왔으며 곧 은행의 당좌대출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는 자금시장의 악순환고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1월까지만 해도 상환분이 더 많던 한은의 통화채는 설직후인 2월 중순부터 열흘동안 2조1천4백억원어치의 순증으로 급변,주로 제2금융권에 떠안겨졌다.
당국의 갑작스런 태도변화에 불안감을 느낀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싼 은행의 당좌대월을 마구 얻어갔다.
결국 지난해 하반기 이후 사라지는가 했던 「자금의 가수요」가 악령처럼 되살아났으며,급기야 한은은 이달중 통화관리의 최우선 방향을 자금 가수요를 차단하는데 두겠다고 강조했다.
김영대 한은 자금부장은 『물가가 올라있는데 통화증가율마저 높으면 인플레심리가 더욱 퍼질 수 있어 설 이후 10여일동안 「걷어붙이고」 설자금 등 통화를 끌어 들였지만 당좌대월로 빠져 나가는 바람에 자금시장만 긴장시킨채 실제로 통화증가율은 제대로 낮추지도 못했다』고 고충을 실토했다. 지금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이 물가를 잡는 것이라는 점은 인정된다.
하지만 물가는 물가,통화는 통화하는 식으로 떼어 놓고 우선 급한 불이나 끄고 보겠다는 정책은 또다른 부작용만 초래할 뿐이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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