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경제패권주의」 표출/슈퍼 301조 부활 왜 나왔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자국이익 최우선” 대외선언/대일 무역협상 주도권 노려
미국의 통상법 슈퍼 301조 부활은 70년대 이후 일본과 빚어온 무역마찰을 더이상 인내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사표시며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든 동원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것은 냉전종식 이후 새롭게 등장한 미국의 경제패권주의 선언으로 볼 수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선언은 신세계 질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3일 슈퍼 301조 부활 법안에 서명한 직후 성명을 발표하고 『이러한 행동은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개방된 경제체제는 미국내에서는 물론 외국에서도 고용창출과 근로자들의 임금 상승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디디 마이어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이 슈퍼 301조 부활 이후에 취할 행동에 대해 『그것은 일본이 결정할 일』이라며 『일본이 하지 않으면 우리가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말에서 암시하듯 미국은 자국 이익을 침해하는 외국의 어떠한 무역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우선 목표는 일본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일종의 메시지로 볼 수 있어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이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자유무역에 대해 아시아 지역이 가장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미국이 내려놓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이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시절부터 대일 무역압력을 가해왔다. 론­야스(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회담,조지­도시(부시 대통령과 가이후 도시키 총리) 회담 등으로 불렸던 정상들의 무역마찰 조정회담에서 미국은 그동안 계속 수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은 3년째 계속 성장률 상승을 기록하고 있지만 일본은 마찬가지로 3년째 연속 불황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미국은 일본에 대해 가장 강력한 칼을 뽑아 든 것이다. 지난해에도 미국은 일본과의 무역에서 5백93억달러(총적자 1천1백53억달러)라는 엄청난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무역적자는 연방 재정적자와 함께 미국경제의 숨통을 누르는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그동안 수많은 미일간 경제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일본측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미국측의 주장이다. 따라서 지난달 11일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합의 이행여부를 평가하기 위한 수치목표를 미국측이 제안했고 일본은 이를 거부,긴장이 고조됐다.
정상회담 결렬 이후에도 미국은 그동안 일본에 시간을 주며 일정한 행동을 취할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일본은 슈퍼 301조의 부활이 기정 사실화된 2일에도 『미국이 양식 있는 행동으로 나올 것을 기대한다』며 미국의 요구에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의 행위에 대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제소할 것이라며 대응했다.
일본의 완강한 저항에 부닥친 미국은 마침내 슈퍼 301조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내 든 것이다. 슈퍼 301조가 부활됐다고 해서 당장 일본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신속·강력한 제재의 법적 수단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슈퍼 301조 부활 이후에도 미국은 당분간 일본의 태도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 법을 통해 제재를 가할 수 있기까지에는 1년반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미국의 경제학자들도 슈퍼 301조는 압력의 수단으로만 평가하고 있다.<뉴욕=이장규특파원>
◎미국의 대외무역 제재 일지
▲87년 4월:반도체 협정 위반으로 대일 제재조치 발표
▲89년 5월:일본 전기통신시장에 대한 통상법 1377조(전기통신분야 제재법안) 발동. 슈퍼 301조에 근거,일본·인도·브라질을 우선협상 대상국으로 지정
▲91년 4월:일본 건설시장에 대해 통상법 301조에 근거,제재발표
▲92년 11월:유럽공동체(EC)의 유지종자에 대해 통상법 301조에 근거,제재발표
▲93년 2월:EC의 전기통신기기에 대해 통상법의 정부조달분야 제재법안에 의거,제재발표
▲93년 4월:일본 건설시장에 대해 통상법의 정부조달분야 제재법안에 의거,제재발표
▲93년 7월:19개국의 강판제품에 대해 덤핑 최종결정
▲94년 1월:일본 건설시장에 대한 제재보류
◎특정 교역국에 최고 100% 보복관세/슈퍼 301조란 무엇인가
슈퍼 301조는 미국 정부가 불공정 무역관행을 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무역상대국에 대해 최고 1백%의 관세를 물리도록 규정한 강력한 무역보복 조항이다.
이 법안은 지난 88년 의회내 민주당 의원들이 상정,89년부터 90년까지 2년 시한으로 운용됐으나 이번에 행정명령으로 부활됐다.
슈퍼 301조에 따라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매년 3월말 무역장벽에 관한 연차보고서를 작성,의회에 제출한다. 이 보고서를 기초로 미국 정부가 불공정 무역국과 관행을 지정하면 USTR는 그 대상국과 불공정 무역관행을 시정하기 위한 교섭을 진행한다. 미국은 교섭이 결렬될 경우 이 법안에 의거,각종 제재조치를 발동할 수 있다.
슈퍼 301조는 지적소유권 분야 301조 등 분야별 301조가 그 해당분야에 대해서만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 반해 한 국가를 불공정 무역국으로 규정,폭넓은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강력한 법안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