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나라당, 사람을 쇄신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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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나라당 경선이 끝나자 모두가 단합을 주문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단합만으로 12월 대선 승리가 보장된다고 생각한다면 실로 순진한 발상이다. 진정 승리를 원한다면 한나라당은 단합 외에 혁신의 모습을 함께 보여줘야 한다. 혁신 없이 단합만 할 경우 한나라당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단합 없이 혁신만 강조하면 당은 분열의 기로에 설 것이다. 따라서 당과 후보는 어렵지만 단합과 혁신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쫓아야 한다.

앞으로 상당 기간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에게 남은 일은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뿐이다. 물론 후보 확정 직후에는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반등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지율은 정체 국면을 거쳐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범여권의 경선이 곧 시작된다. 지금 한나라당과 이 후보의 지지율 고공행진은 아직 상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거품이 적지 않게 끼여 있다. 이제 범여권은 주말마다 경선 이벤트를 벌일 것이고, 자연히 언론과 국민의 관심도 그쪽으로 쏠릴 것이다. 범여권의 경선은 현재로서는 세 개의 트랙으로 전개될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둘에서 하나로 줄어들지 알 수 없다. 경선 트랙의 숫자가 줄 때마다 그리고 후보군이 좁혀질 때마다 여론은 출렁거릴 것이고 그 결과는 한나라당과 이 후보의 지지율 저하로 나타날 것이다.

둘째, 경선 과정에서 범여권의 주자들은 자신이 이 후보를 상대할 적격자임을 내세우기 위해 이 후보에 대한 검증 공세를 이어갈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로 인해 이 후보의 지지율이 또 한번 출렁거릴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 10월 초 예정대로 남북 정상회담이 있을 경우 그리고 그때를 전후해 범여권의 후보가 확정될 경우 여론의 관심은 더욱 범여권쪽으로 몰릴 것이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한나라당과 이 후보가 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지율 하강을 막기 위해서는 한나라당도 끊임 없이 국민 감동 이벤트를 벌여나가야 하며 그 핵심은 살을 깎는 자기 혁신이어야 한다. 국민의 이념 성향을 조사해 보면 때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보수 30%, 중도 40%, 진보 30% 정도의 분포가 나온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대선은 결국 중도 40%를 누가 많이 가져가느냐의 싸움이 될 것인데 현재의 한나라당 모습으로는 이 점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한나라당과 이 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는 절대적 선호라기보다는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대한 반작용에서 오는 것이 크다. 따라서 범여권이 전열을 가다듬고 참신한 단일 후보를 낼 경우 40%를 차지하는 중도는 언제든 말을 바꿔 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한나라당은 자기 쇄신 프로그램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것의 내용에는 구시대 인물을 과감히 퇴진시키고 외부에서 참신한 인재를 수혈하는 인적 쇄신을 기본으로 하되 문제가 많은 공약과 정책을 과감히 정비하는 것 등이 포함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당명까지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첫걸음은 이 후보의 주변 인물이 백의종군을 선언하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경선에서 진 박근혜 후보가 백의종군을 선언했지만 정작 그 선언을 해야 할 사람들은 이 후보의 측근이었다. 그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신들이 백의종군을 선언했던 것에서 교훈을 얻고 스스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 한나라당 자기 쇄신 프로그램 시간표는 10월 중순께를 목표로 차근차근 진행돼야 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올 10월은 한국 정치의 일정표에서 참으로 분주한 달이다. 그런 달에 손 놓고 지내는 당에는 미래가 없다. 한나라당의 자기 쇄신 프로그램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시간표를 짜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