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기 KT배 왕위전' 28, 30-정처 없는 발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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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41기 KT배 왕위전'

<도전기 4국 하이라이트2>
백 .이창호 9단(왕 위)  흑.윤준상 6단(도전자)

장면도(22~35)=백△의 모호함(?)에 비해 흑▲의 침투는 목표가 분명하다. 집을 깨자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전개되는 이상야릇한 상황-특히 백의 행마-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고수이거나 천재다.

우선 22. 괘씸죄를 묻는 차원에서라도 흑▲를 공격하고 싶은 장면인데 엉뚱하게(?) 흑의 좁은 곳을 비집고 들어갔다. 윤준상 6단은 23, 25를 적시에 선수하고 27로 가둬버린다. 22의 목숨이 완전히 끊어진 건 아니지만 백은 피를 흘렸고 그 대가로 중앙이 매우 튼튼해졌다. 이 세력을 배경으로 이번에야말로 흑▲를 공격하겠구나 싶었지만 이창호 9단은 다시 28에 둔다. 29엔 다시 30.

이 28과 30에서 형언할 수 없는 아득함이 느껴진다. 망연하고 정처 없이 허공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 9단은 막판에 몰렸음에도 승부 자체를 떠나버린 고승처럼 무념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러므로 이 판을 지켜보는 김지석.온소진 등 프로들조차 28과 30에 대해서는 "몰라요"하며 웃을 뿐이다. 이 9단의 심정을 굳이 설명하자면 이렇다. 22는 대개 '참고도' 백1로 근거부터 빼앗고 본다. 이게 일반적인 공격 방법이다. 그러나 흑2로 뛰어나오면 A나 B로 공격해야 하는데 이 9단은 이 공격이 '쉽지 않다'고 봤다. C의 뒷문도 열려 흑이 살아버리면 남는 게 없다. 그럴 바엔 중앙을 넓히며(흑진의 확대를 견제하며) 흑이 어떻게 움직이나 기다리는 게 나을 것이다.

기다림의 효과였을까. 과연 흑에서 이상한 수(31, 33)가 나타났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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