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맞은 러시아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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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러사회 전반적 보수기류 드러난 것/보­혁대립 격화예상… 옐친대응 주목
러시아 두마(하원)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 정적에 대한 사면결의안 통과는 옐친 대통령과 지난해 10월 유혈사태 당시 무력으로 보수파를 진압했던 친서구노선의 개혁파 지도자들에게 사태 종식 4개월여만에 커다란 정치적 패배를 안겨주었다.
이는 또한 구 소련시절 소련을 구하기 위해 쿠데타를 감행했다고 주장해온 아나톨리 루키야노프 등 주모자들의 복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앞으로의 러시아 정국에 일대 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행정부에 의한 법적 절차가 마무리 지어지면 루슬란 하스블라토프 전 최고회의(의회) 의장·알렉산드르 루츠코이 전 부통령을 비롯한 구 러시아 의회의 보수파 지도자들과 구 소련 정치가들인 루키야노프(최고회의 의장)·겐나니 야나예프(부통령)·발렌틴 파블로프(총리)·블라디미르 크류츠코프(국가보안위원회 의장)·드미트리 야조프(국방장관) 등이 모두 자유의 몸이 되며 이중 일부는 이미 정치일선에 뛰어든 루키야노프처럼 정계에 복귀할 것이기 때문이다.
두마의 이번 결정에 대한 반응은 보수파와 개혁파간에 양극의 입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친옐친파인 블라디미르 슈메이코 연방평의회(상원) 의장과 예고르 가이다르 「러시아의 선택」당 지도자는 『쿠데타 주동자들과 보수파에 훈장을 달아준 격이며 몇달 이내에 다시 새로운 유혈 무력충돌이 발생할 것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겐나니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같은 극우민족주의자들은 『러시아의 정치·사회적 안정을 위해 진정한 의미의 화합의 발걸음을 내디딘 쾌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두마가 결정한 이번 사면 결의안이 어떤 방식으로 행정부에 의해 수용될지 아직 미정이지만 옐친 대통령이나 행정부 지도자들은 의회 결정을 수용할 것이냐,아니면 의회와 다시 한번 정면으로 대결할 것이냐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처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결론이 어떠한 형식으로 내려지든 기간은 몇달을 넘기지 않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루츠코이 등 현재 감옥에 있는 보수파 지도자들은 다시 정치력을 회복하려 시도할 것이며 이에 따라 96년의 대통령선거에 대한 각 진영의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정치평론가들은 두마가 내린 이번 결정에 대해 『러시아의 현 정치상황을 지배하는 보수파의 힘과 러시아 사회내의 보수적 기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이로써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정쟁이 예상보다 빨리 불붙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또한 이번 사면안의 통과과정에서 보여졌듯 이미 친 서구노선의 개혁파가 정국의 주도권을 의회내에서는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에 이들 개혁파가 정국 주도권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인기를 끌 수 있는 정책노선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대외정책·경제정책 등이 보수화될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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