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동성애 코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대중문화 속에서 동성애가 예전에 비해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함께 변하고 있다. 1960년대 미국의 연쇄 살인사건을 영화화한 ‘조디악’에서 언론들은 “범인은 동성애자”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반면 지난해 아카데미는 동성애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에 작품상의 영광을 안겼다.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선택이라 더욱 화제였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드라마·광고 속 동성애 묘사는 훨씬 과감해졌고 관객들은 더욱 관대해졌다. ‘왕의 남자’는 동성애 코드를 넣고도 거뜬히 1000만 명 고지를 넘었다. 게이 커플이 나오는 ‘후회하지 않아’는 독립장편영화로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최근 젊은 층에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도 방송 초기 동성애 코드로 관심을 모았다. 겉보기엔 미소년인 남장 여자와 꽃미남의 로맨스다. 물론 이성애 커플의 해피 엔딩으로 결론이 났지만 외관상 ‘남남 커플’의 안타까운 로맨스가 흥행 돌풍의 요인이 됐다. 특히 여성 시청자들이 거부감 없이 드라마를 즐겼다.

최근 S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 앤 조이’의 조사에서도 드라마·영화의 동성애 소재에 대한 선호도는 남성(16%)보다 여성(25%)이 높았다. 연령대별로도 20대(24%), 30대(23%), 40대(16%) 순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선호보다 ‘비호감’이 많지만 젊은 여성일수록 거부감이 적다는 결론이다. 실제 ‘후회하지 않아’의 최대 관객도 20대 여성들이었다.

이런 ‘게이 로맨스’는 10대 소녀 팬들이 남성 스타들을 주인공으로 꾸며내는 이야기인 ‘팬픽(Fan-Fiction)’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오빠’를 다른 여성에게 빼앗기느니 ‘오빠’들끼리 사랑하길 바라는 데서 출발한 성적 환상이다. ‘야오이(やおい)’라고도 불리는 이런 경향은 10대 소녀들의 하위문화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이런 하위문화가 점차 주류의 상업 코드로 등장하는 경향이다. 그 뒤 달라진 남녀의 권력관계가 숨어 있다. 우선 점차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며 성적 주체로 부상하는 여성들이 있다. 이들이 남성들을 성적 소비의 대상으로 삼는 방식의 하나로 게이 로맨스를 활용하고 있다. 여름방학 조정캠프에서 소년이 게이로 탄생하는 과정을 그린 독일 청춘영화 ‘썸머 스톰’이 틈나는 대로 미소년들의 벗은 몸을 전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