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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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탈출(39) 방 밖에서 마루를 건너오는 송씨의 발소리가 들렸다.
『너 여기 있냐?』 『네 엄마.』 『뭘 하니.』 『애 젖 먹이는데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던 은례는 일어나면서 송씨를 맞았다.
송씨는 삶은 밤이 든 대접을 들고 있었다.
얼굴은 왜 이렇게 빨개요.이상해요.애들은 다 이래요? 그런 말을 해 가면서 처음에는 만지기도 조심스러워 하던 딸이 어느 새 아이 안는 게 자리가 잡혀 간다는 생각을 하면서 송씨는 방안으로 들어와 앉았다.사람이란 다 살게 마련이지, 제 새끼인데어련하려구.딸의 모습을 보면서 송씨는 들고 들어온 대접을 내려놓았다. 『밤 삶았다.먹어 봐라.』 『웬 밤이에요?』 『묻었던걸 꺼냈지.』 벌레 난다면서 해마다 밤을 뒤꼍에 묻곤 했던 송씨였다. 『어떻게 된 나무가 해거리를 해서 그렇지 올해는 알이아주 실했단다.』 은례 앞으로 다가앉으며 송씨가 아이를 들여다보았다.그 눈에 웃음이 돈다.
『얘가 이젠 제법 큰 거 같다.』 『그래요? 난 맨날 봐도 똑같은 거만 같은데.』 옷섶을 여미는 은례에게서 아이를 받으며송씨가 말했다.
『그런 소리 마라.보기에 벌써 다른데.』 아이를 받아 품에 안아 어르는 송씨를 보면서 은례는 삶은 밤을 집어들었다.언제부터였는지 기억에 없지만 은례는 어려서부터 삶은 밤을 칼로 잘라안에 든 것을 숟가락 끝으로 파 먹곤 했었다.칼로 밤을 자르는은례에게 송씨가 말했다.
『사람이 참 희한하지.애들이 백일 때까지는 에미 뱃속에서 타고 나온 기운이 있어서 앓지도 않고 그저 쑥쑥 크는 걸 보면.
』 『그래요? 몰랐네 난.』 『갓난 아이가 아픈 게 어딨니.좀지나야 그저 고뿔도 걸리고 그러지.젖에 무슨 그런 기운이 있다고도 그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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