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에 대한 충고(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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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느 시대,어느 정치체제 아래서나 개혁이 이뤄지면 으레 회오리바람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개혁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그 회오리바람의 파장도 상대적으로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대표적인 예를 조선조 중종때의 개혁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급진적 개혁의 주체였던 조광조는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개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한채 사약을 받는 신세가 된다.
10여년전 조광조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 『왕조의 제단』을 쓴 작가 서기원은 그때의 일을 「정치와 지식인과 말의 3자가 균형을 이루지 못한 사회현실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것」으로 보았다. 정치와 말,그리고 정치와 지식인의 상관관계가 바람직한 양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한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서기원의 이같은 술회는 중종때의 개혁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정치에 두루 통용된다. 여기서의 「말」이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고,옳지 못한 것을 옳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비판정신을 뜻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정치학자들도 이 점을 국가정치에 있어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는 문제라 보고 있다. 영국의 정치체제에 있어 최고통치자는 그와 그의 직책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엄격하고 주의깊은 비판적 안목들을 참아넘기는데 비해 미국의 백악관에서는 아무도 대통령에게 그의 의견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 양국의 차이라고 주장한 정치학자도 있다. 우리나라가 어느 쪽에 가까운지 곰곰 생각하게 한다.
일선에서 물러난 정계원로들이 엊그제 야당 대표를 만나 현 정치체제와 야당을 함께 날카롭게 비판한데 뒤이어 『월간중앙』 최신호에서는 전 정권의 총리를 지낸 현역 여당 의원이 대담을 통해 현 정부의 개혁정책을 비판하고 나서 주목을 끌고 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전혀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못하지만,올바른 충고를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가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지름길임은 물론이다. 『대통령직은 일종의 경외심을 일으키는 직책이며,이것이 반대의견을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어느 정치학자의 말은 「말하는 용기」와 관련해 음미해볼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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