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화법」 화려한 수사와 변조/잇단 신조어로 갈수록 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특유의 「충성론」 되풀이 의중 궁금/「자의반…」 「윤허」등 뛰어난 “말재주”/해석상 의문불러 논란일으키기도
민자당의 김종필대표가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영삼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서 재신임을 얻고 난후 그는 경제5단체장을 만나는가 하면 중소기업 대표·소비자단체들과도 만날 예정이다. 김 대통령이 주창한 생활정치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그는 대통령에 대한 특유의 충성론을 다시한번 개진했다. 『당은 톱(TOP)인 총재와 2인자인 대표,그리고 당5역으로 이뤄져 있다. 대표를 비롯한 스태프는 총재가 무엇(WHAT)을 지시하면 이를 어떻게든(HOW TO) 수행해야 하며,총재의 생각을 받드는 것은 곧 충성을 의미한다.』
김 대표 화법의 진수는 역시 봉건적 수사다.
『세상은 바뀌었어도 차릴 것은 차려야 하는 것이 인간생활 영위의 기본』이라는게 그의 말이고 보면 그가 즐겨쓰는 수사는 그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투영한다고 볼 수 있다.
김 대표는 90년 가을 내각제 각서 공개로 궁지에 몰린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가 노태우대통령에게 전면승부를 걸때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관을 잘 반영한 말이다.
이런 JP였던 만큼 김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되자 그런 연장선상에서 김 대통령을 높이 받들어 모시는 것이다.
그는 김 대통령이 취임하기전인 지난해 1월20일 당무회의에서 『차기 대통령의 「윤허」를 얻어 회의에 참석했다』고 말해 『세상을 거꾸로 사는게 아니냐』는 비난을 자초했다.
○선문답에도 능해
그는 그러나 지난해 8월16일 김 대통령과 민자당 의원들의 만찬에서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했다. 『신한국을 창조하시려는 홍곡(큰기러기와 고니,김 대통령을 비유)의 대지를 비록 연작(제비와 참새,김 대표 자신을 포함한 민자당 의원)이지만 어찌 촌도하지(헤아리지) 못하겠습니까.』
김 대표는 이처럼 화려한 수사로 장식된 은유를 즐겨쓴다. 선문답에도 능하다.
대신 맺고 끊는 직접화법이나 평범한 대화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그의 말은 때론 감칠맛이 난다. 운치도 있다.
반면 곧잘 해석상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때문에 가끔 의뭉스럽다는 비난도 듣는다.
김 대표는 김 대통령이 취임후 막 개혁드라이브를 걸려고 할때(지난해 3월2일) 『백리길을 가는데 처음부터 뛰면 뒤로 넘어진다. 온고지신을 새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극우보수로 평가받는 그였던 만큼 이말은 자연 개혁의 「뒷다리」를 잡는 것으로 해석됐으며,따라서 그의 충성심도 한때 의심을 샀다.
그는 또 지난해 5·16 민족상 수상식에서 『나라를 일으킨 분은 박정희대통령이고,전두환·노태우대통령은 잘 나왔건 못나왔건 그 계승자로 존재하며,이러한 토양위에서 김영삼대통령이 내일을 향해 전진하는 대통령으로 선택됐다』는 이른바 역사의 기승전결론을 제기했다.
김 대표는 이와관련,『역사는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다는 개인적 사관을 밝혔을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지만 민자당내에서도 『시대에 역행하는 발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세상이치 순종”
지난해 10월 최형우 내무장관은 이른바 「대표자격론」(차기대표 개혁의지가 투철한 사람이 돼야 한다)을 제기,김 대표를 자극했다. 김 대표는 그후 11월초 「오십이지사십구비」(나이 쉰이 되어 돌아보니 49년을 헛되이 살았다)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는 『벌써 11월이므로 지난 10개월을 뉘우쳐 유종의 미를 거두자는 뜻』이라고 설명했지만,정가에선 그가 자꾸 「궤상육」(도마위의 고기)이 되는데 대한 허탈한 심경을 표출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돌았다.
김 대표의 탁월한 조어능력을 보여주는 말은 「자의반 타의반」. 그가 박정희정권때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외유를 떠나면서 툭 던진 이 말은 이후 변화의 시기마다 상투잘린 정객들이 밖으로 나가면서 애용하곤 했다.
80년 봄 모두를 「서울의 봄」이 왔다고 들떠있을 때 김 대표는 「춘래불이춘」(봄이 왔으되 봄같지 않음)이라고 했다. 당시 정국의 상황을 아주 잘 꿰뚫어 본 총명한 표현이었다.
김 대표는 갑술년 휘호를 「상선여수」라고 썼다.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으므로(유영불쟁선) 물처럼 사는게 제일 좋다는 뜻이다. 곧 세상 이치에 따르고 순종하는게 가장 총명한 처신술이라는 이야기다.
그가 김 대통령으로부터 재신임받았고,그래서 나름대로 당무에 의욕을 보이고 있으나 분수와 한계를 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것도 바로 이런 화법·어법을 통해서 가능하다.<이상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