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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이원조·박태준·정동호/해외 도피자들 어디서 뭐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노 전 대통령과도 관계단절… 노모장례식 불참/김종휘씨/「한국논단」 회견뒤 동향 살피며 재회견 소문도/박태준씨
새정부가 들어선후 대표적인 해외도피자 두명을 꼽는다면 김종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이원조 전 민자당의원이다. 박태준 전 민자당 최고위원·정동호의원도 해외로 도피해 있지만 자신의 위치는 숨기지 않으니 도피자라기보다는 은둔자라고 할 수 있다.
도피자 김·이씨도 서로 성격이 크게 다르다. 5,6공의 정치자금에 깊이 손을 담갔던 이씨는 아무 제동도 받지 않은채 나라를 빠져나간 것은 물론 정권으로부터 추적을 받은 적이 없다. 이씨는 정권보다는 국민·언론을 피해있는 셈이다. 그는 일본 또는 미국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김씨는 법의 추적을 피해 도피하고 있는 상태다. 6공내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외교·안보참모(장관급)였던 그는 율곡사업과 관련해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있다. 그의 계좌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1억4천여만원이 발견됐다.
율곡사업 특감이 착수되기 직전인 지난해 5월 조용히 한국을 떠난 김씨는 한동안 미국 워싱턴에 있는 한 연구기관에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곧 그는 언론인과 지인의 안테나에서 사라졌다. 그는 전직대통령 감사여부로 시끄러울 무렵 서울의 정해창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딱 한차례 전화를 걸어 『죄송하다』는 뜻을 남긴게 전부다. 외아들인 그는 지난해 10월25일 노모(84)가 사망했는데도 서울에 나타나지 않았다.
김씨부부의 소재는 철저히 안개에 싸여있다. 아들(27)과 딸 정도만 알고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서초동 빌라는 전화를 걸어도 응답이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의전수석을 지냈던 김병훈씨와 부인이 김씨의 친누나인데 그도 『동생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어 어느 도시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김씨는 다만 자신이 가깝게 지내던 모인사에게 가끔 전화를 걸어 자신의 심경과 입장을 전하곤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김씨가 미국정부에 영주권을 신청했다는 얘기가 전해지자 김씨와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한바 있는 한 인사는 『김씨의 혐의내용이 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그는 간이 작아 큰 돈 삼킬 위인이 못된다』면서 『그의 도피 역시 소심하고 겁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시절의 흙탕물을 혼자 뒤집어쓴 장세동씨와 너무 극명하게 대조가 돼 이래저래 노 전 대통령만 모양새를 구기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김씨의 영주권 신청에 관한 이야기는 더 이상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정치적 망명 의사가 있는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정황으로 보아 몇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첫째,김씨는 미국 국내법상 「정치적 망명」의 자격이 없다는 점이다. 정치적 망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경우는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에 정치적 또는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박해를 받을 염려가 있는 경우다. 김씨는 범죄피의자이지 정치적 피해자는 아니라는게 정부의 설명이다.
둘째,그러나 김씨를 강제로 한국으로 데려올 방법도 없다. 한국과 미국간에는 형사사법 공조조약은 있으나 범죄인 인도조약은 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때 김씨는 망명을 기도했다기 보다 영주권으로 해외도피를 연장해보려고 하는 계산이 있었던 것 같다.
김씨의 영주권 신청으로 다른 「해외인사」에게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미 세월이 어느 정도 흘러 이들도 현상황을 변화시켜보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동경의 박태준씨는 최근 『한국논단』지와 가진 회견에서 자신의 가슴에 묻어두었던 응어리의 일부를 털어놓았다. 김 대통령이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한풀이 반격으로도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는 또 다시 입을 열 것이란 소문이 파다해 주목을 받고 있다.
「토사구팽」의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서울생활이 별로 재미없다』며 지난해 12월 다시 미국으로 갔다. 대만에 있는 정동호의원은 이달내로 돌아올 계획이라고 한다.
박태준 전 국회의장도 7일 경북중고교 동창회 신년교례회에 참석,인사말을 통해 『수양이 부족해 할말은 많지만 이 자리에서는 애기하지 않겠다』면서 『올해가 개의 해인만큼 「토사」는 하되 개와 모든 살아있는 생물을 잡아먹지 않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해 「토사구팽」에 빗대 감정의 일단을 우회적으로 피력했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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