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하는 서일본(밖을 보자: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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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동서 일직선 제2국토축 만든다/9개부 현지사 동해진출 「경도선언」/GNP 3조불 거대경제권 꿈꾼다/무학항,한·중·러 물류 거점준비 총력
황해와 동해에 연해있는 중국의 동남부와 동북부에서 서일본으로 이어지는 지역은 21세기를 향한 가장 역동적이고 변화가 많을 경제의 뉴 프런티어다.
일본 재계가 올해 전반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중국과 동남아를 최대의 투자대상으로 주목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까지도 「태평양의 단축」을 부르짖으며 이 지역으로의 접근을 꾀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일본은 이미 광범위한 인프라스트럭처(사회간접자본) 투자에서부터 연안도시들간의 공동개발 노력으로 앞날에 대한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번성한 동일본­미국의 태평양축에 대응해 서일본­동아시아를 축으로 하는 새로운 동아시아경제권을 일으키자는 구상이기도 하다.
『나와 교토(경도)부의 아라마키(황권정일) 지사는 마이즈루(무학)항을 파는 세일즈맨입니다.』
일본의 고도 교토에서 북쪽 해안을 따라 약 1백㎞ 떨어진 작은 항구도시 마이즈루시. 희수(70세)의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 풍기는 마치 이 마사토(정정정등) 마이즈루 시장이 건넨 첫 인사다.
『태평양 연안지역이 양지라면 우리(동해 연안지역)는 언제나 음지에만 있어왔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저쪽의 국제교역량이 1백이라면 우린 1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이제 그 1을 3이나 5정도로 올려보자는 작업이 시작되고 있어요. 바로 환일본해(동해) 경제권 구상을 통해서죠.』
교토부에 속해있는 마이니즈루시는 인구가 불과 9만6천명밖에 안되는 「미니도시」.
그나마 매년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시청관계자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지명도 있는 지역 기업이라곤 히타지(일립) 조선소와 일본 이타가라스(판유리) 정도라 이렇다할 세수도 없는 형편이다.
어떡하든 젖줄인 마이즈루항을 팔아(?) 지역발전으로 연결시켜야 하는 시의 절박함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동구권 붕괴와 소련 해체이후 동해에서 일어나고 있는 급격한 변화는 설움많던 마이즈루시에 신선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패권과 긴장의 바다」가 어느 틈엔가 「평화와 교류의 바다」로 탈바끔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바다를 끼고 있는 탓에 지역적인 열등감에 시달려왔던 마이즈루시는 「해빙」과 함께 새로 열릴 환동해 경제교류시대에 잔뜩 마음 부풀어 있는 것이다.
마이즈루항의 설명을 듣기 위해 찾아간 항만 사무실.
안내해주던 시청 기획과 세가와 나오루(뇌천치) 계장은 이곳에 들른 사람중 한국사람은 기자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준비된 비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항만소개 테이프의 음성은 한국어였다. 중국어로 된 테이프도 있다고 한다.
테이블 위에 놓은 항만소개 자료에도 일본어로 된 설명 옆에 깨알같은 한글설명이 붙어있었다. 한국사람이나 중국사람이 잘 찾아오지도 않는데 굳이 한글과 중국어로 된 자료를 준비해둔 까닭을 묻자 세가와 계장은 『발로 뛰는 우리 시장과 교토부 지사님 세일즈 자료』라고 설명했다.
교토부의 아라마키 지사와 마치이 마이즈루 시장은 각각 89년 설립된 「마이즈루항 진흥회」란 단체의 회장과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교토부와 마이즈루시의 젖줄인 마이즈루항의 무역진흥을 위해 지사·시장이 발벗고 뛰고 있는 것이다.
○연안 9부·현 협력
태평양 연안에 비해 발전이 늦었다는 지역적 열등감은 마이즈루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동해 연안지역,즉 서일본지역의 도시라면 어디서나 동병상련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그런 만큼 환동해 경제권 구상의 태동은 서일본지역 전체를 설레게하는 기대인 것이다.
지난해 6월11일 교토의 미야코(도) 호텔.
이날 이 호텔 회의실에는 교토·효고(병고)·후쿠이(복정) 등 긴키(근기)·호쿠리쿠(북릉) 지방의 1부 2현과 돗토리(도취)·시마네(도근)·야마구치(산구) 등 주고쿠(중국)지방의 3현,그리고 후쿠오카(복강)·사가(좌하)·나가사키(장기) 등 규슈(구주)의 3현 등 모두 9개 부·현의 지사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소위 「환일본해 교류 서일본협의회」를 창설하는 자리다.
초대회장은 아라마키 교토부 지사가 맡았다. 임기는 1년. 각 지사가 돌아가며 회장직을 맡는다. 협의회 설립취지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다가오는 환동해 경제교류시대에 대비해 동해 연안지역들끼리 힘을 합하자는 것이다.
『일본해에 인접한 서일본 9부·현지사는 서로 협력해 환일본해 교류와 일본해 국토축 형성을 강력히 추진해 나갈 것에 합의….』
이날 서일본지역 지사들이 채택한 「교토선언」의 머리부분이다.
이 선언이 담고 있는 뜻을 살펴보면 서일본지역에서 진행중인 환동해 경제권 구상의 실체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자발적으로 추진
첫째는 동해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바람에 서일본지역들이 적극 동참해 각 지방의 발전으로 이어가자는 것이며,둘째는 이 지역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도로·공항·철도의 정비,즉 인프라 스트럭처에의 투자를 통해 제2의 일본 국토축을 만들자는 것이다. 일본의 제1국토축은 지금까지 최대의 경협과 안보 파트너였던 미국을 향해 형성돼 있다. 말하자면 미국 지향성의 축이다.
동경을 중심으로 히로시마(광도)∼오사카(대판)∼나고야(명고옥)∼센다이(선대) 등을 잇고 있는 이 축은 냉전이 진행되는동안 일본의 발전을 지탱하는 「등뼈」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일본의 「총알열차」 신칸센(신간선)과 고속도로는 이 축을 따라 시원스럽게 달리고 있다.
그러나 동경권과 제1국토축에 의한 1극·1축 집중은 일본의 경제나 국토구조,심지어 국민의 생활조건에 있어서까지 심각한 왜곡현상을 초래했다. 서일본지역이 느끼는 지역적 열등감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반해 서일본의 9개부·현이 이제 막 추진하고 있는 제2국토축은 동아시아를 지향한다.
지역적인 열등감을 스스로 극복하고 일본 전체의 균형있는 발전을 꾀하려는 자생적인 움직임이다.
이들 서일본지역들은 96년부터 시작되는 제5차 전국종합개발계획에 각 거점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와 공항·철도정비 등 제2차 국토축 만들기에 전력투구할 생각이다.
서일본지역의 지방공무원들은 환동해 경제권을 『세계에 남은 거의 유일한 뉴프런티어』라 부르고 있다(마이즈루 시청 직원). 그래서인지 이들의 자세도 미지의 땀을 개척하는 개척자나 새로운 무역상대를 찾는 상사맨의 모습이다.
○시공무원이 앞장
이제 낙후돼있던 조그만 항구도시 마이즈루시의 직원들은 전아시아 육지면적의 약 20%와 인구의 약 10%(약 2억9천만명),그리고 국민총샌산(GNP) 약 3조달러가 집중된 대경제권을 바라보고 있다. 환동해 경제권의 꿈이다.
마이즈루시와 일본 제2경제권역인 경·판·신(교토·오사카·고베) 경제권의 중심지 오사카(대판)와의 거리는 불과 1백25㎞.
대안의 중국 동북 3성,러시아 극동지역,한국 등과 경·판·신 경제권을 잇는 동해연안의 물류 거점도시로의 성장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게 이들의 생각이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움직임은 벌써 이처럼 서일본의 한 작은 도시에서도 준비되고 있다. 말로만 요란을 떨고 부동산 투기바람만 불다만 우리의 동해와 서해에도 본격적이고 장기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때가 되었다.<김국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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