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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그려본 새해 정치권 기상도/정치부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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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율곡」·핵·장선거 “태풍의 눈”/여야 당주도권 싸고 세력다툼 가시화/정치개혁입법도 매듭… 교육수술 시작/「일하는 내각」,꼼짝않는 공직 어떻게 움직일지 관심
­지난해는 정말 역사의 격랑이란 말을 실감한 한해였습니다. 32년만에 탄생된 문민정부가 몰고온 과거청산의 사정과 개혁의 바람이 사회 전체를 뒤흔들어놓았고 쌀시장 개방 파문이 나라를 휩쓸었습니다.
­매일 새로운 해가 솟듯이 새해에도 또다른 환경과 과제의 격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을 밖으로 돌려보면 북미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의,유럽은 유럽공동체(EC)로의 통합을 가속화하여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고 있는가하면 우루과이라운드의 타결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우물안의 개구리로 안주할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 한반도를 살펴보면 금년은 북한 핵문제가 결판이 날 수 밖에 없는 해이므로 남북문제에서도 분수령이 되는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작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국제화·개방화의 구호가 금년에 가시적인 정책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험난한 국제경쟁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해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지요.
○「장선거체제」 돌입
­95년 상반기에 자치단체장선거,하반기에 15대 총선 공천 등 정치일정 때문에 김영삼대통령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올해 뿐이라고들 말하지요.
­김 대통령은 개혁과 경제활성화를 국정의 양대 목표로 하고 있어요. 특히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혁을 통한 환경개선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김 대통령은 금년봄까지는 정치개혁 입법을 마무리하여 정치개혁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공무원 복무개혁·교육개혁도 강도높게 추진할 계획입니다.
­특히 공무원 개혁에서는 이회창 국무총리가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궁금합니다.
­연초부터 가속화될 율곡사업에 대한 본격감사와 그 결과는 또 한차례 군과 관련업체에 사정회오리를 몰고올 조짐이며 특히 문자 그대로의 토사구팽의 인사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지난해에도 경험했듯이 개혁과 경제활성화는 상반된 목표일 수 있습니다. 김 대통령은 지난해 사정·개혁으로 80%를 넘는 지지율을 얻었지요. 그러나 만약 금년에 경제가 어려워진다면 박수소리는 금방 사라질 거예요.
­김 대통령도 그래서 경제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치개혁에 일단 승부를 걸 결심인 것 같은데 정치일정은 어떤가요.
­민자당과 민주당은 각기 금년에 전당대회를 통한 체제정비라는 숙제를 안고 있어요. 게다가 하반기에는 정국이 본격적으로 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라는 대회전의 준비단계에 들어갑니다. 94년 정국의 주요변수죠.
­민자당의 5월 전당대회에서는 김종필(JP) 대표체제 유지여부가 최대 관심인데 유임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있지요. 개혁강화를 위해 JP 대신에 민주계를 내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김 대통령은 현재의 세력균형 구도를 선호하는 듯해요. 당대표를 바꾸면 선두중진들의 후계다툼이 조기에 촉발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사항이기 때문입니다.
­JP체제가 유지되더라도 민정계는 역시 소외그룹의 신세를 면치못할 전망입니다. 앞으로 있을 지구당 개편과 자치단체장 선거때 더욱 표면으로 드러나겠지요. TK(대구·경북지역) 신세 역시 별로 호전될 것 같지 않아요. 김 대통령 정권이 TK를 끌어안을 조짐이 크게 보이질 않아요. 민자당 주변에선 『TK가 밟힐대로 밟히면 탈당같은 극한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호사가적 소문도 돌지요.
­민주당 세력다툼도 볼만할 것 같아요. 민주당은 내년 5월 정기전당대회를 올 7,8일께로 앞당겨 열 기미인데 신 지도부가 사실상 단체장 공천권을 행사하게 되어있어 당권경쟁이 더욱 치열할 겁니다.
­이기택대표의 주류그룹은 김대중 전 대표(DJ)의 응원에 힘입어 수성에 자신있다는 표정입니다. 그러나 김상현·정대철고문 등 비주류는 『김심은 지난번 한번으로 끝났다』며 전당대회전에 시장·도지사 출마희망자를 엮어 내부 공동전선을 구축해놓을 겁니다.
­야당의 이같은 내부사정 때문에 대정부 공세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질게 틀림없어요.
­김대중 전 대표는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전당대회나 단체장 공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란의 호메이니 같은 영향력이라고 할까요.
­그의 정계복귀 가능성도 일각에선 정치나 은퇴약속을 번복할만한 절박한 상황이 금년에 조성될 것 같지는 않지요. 남북관계에 큰 변화가 생겨 「통일전문가 김대중」의 등장을 필요로하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그의 정계복귀는 여전히 가시권 밖에 있지만 호남 장악력은 지속되겠지요.
­정계개편 여부도 DJ 복귀론과 비슷한 변수죠. 올해엔 정계개편 같은 지각변동이 없을 거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지만 정치는 유기체여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거든요.
­김 대통령 등 정권 핵심그룹은 일단 민자당 체제로 단체장선거를 치른다는 구상인 것 같아요. 따라서 정계개편설은 95년 하반기 총선 공천 무렵에 가서야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을 겁니다.
­정계개편같은 대변동은 엇더라도 여권내에서 차기를 노린 군웅의 세다툼은 정치권을 달구어놓을 겁니다. 지금 민주계만 보더라도 최형우 내무·서석재 전 의원이 득세했으니,김덕룡의원이 실각했느니 말이 많지만 부심상황을 속단하기 어렵습니다.
○정계개편 없을듯
­다만 금년 하반기에 단체장선거를 겨냥한 야권 통합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공천결과에 따라 제3당의 입지와 공간이 상대적으로 넓어질 공산이 커지겠지요.
­김 대통령은 올해에도 직접 국제경쟁력 제고와 행정규제완화 문제 등을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의지가 과연 어떻게 나타날까요.
­여러면에서 내년은 정부주도 경향이 강하리라 봅니다. 대통령뿐 아니라 이 총리의 내각성격도 그렇고,시기적으로 내년부터 이어질 선거를 생각한다면 차분히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올 한해 뿐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장애물도 적지 않을 거예요. 1차적으로 연초부터 오를 공공요금 등 물가가 발목을 끌어당길 것이고 금융실명제의 후유증이 표면화되기 시작하겠지요. 1차 시련은 3월부터 시작되는 임금협상인데 지난해 「고통분담」이라는 자제분위기와 달리 올해는 임금인상요구가 강해지리라 봅니다. 4월 국회의 UR 비준건은 날치기 재현이 우려되는 정치적 악재로 작용하겠죠.
­내부적인 어려움은 뭐니뭐니해도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입니다. 최형우 내무장관이 공직풍토 개선을 겨냥해 중용되었는데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모르겠습니다. 최 장관의 성격으로 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겠지만 정치권과 달리 공무원들의 보신주의는 워낙 뿌리가 깊어 자칫 더 몸을 사리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이런 환경속에서 이 내각은 얼마나 능동적으고 대처할 수 있을까요.
­이 총리 역시 「의전총리」나 「방탄총리」 등 허수아비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고 능력도 있기에 올 한햇동안 중요한 변수가 될듯 합니다. 본인 스스로도 『경제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는데 기대를 걸어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개혁들이 이뤄질까요. 대통령이 강조해온 정치·교육·행정 등 분야별로 짚어나가보죠.
­우선 정치권에서는 지난해 마무리짓지 못한 정치관계법 개정이 이뤄지리라 봅니다.
­교육개혁은 대통령이 근본적으로 바꿔놓겠다는 분야죠. 미봉책으로 그쳤다가는 교육열이 높은 우리의 특수성에 비춰볼 때 오히려 욕만 듣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일부에서는 김숙희 신임 교육부장관이 자녀가 없는 독신녀에다가 교육학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 등을 들며 「적임자인가」라는 우려가 있는데요.
­거꾸로 바로 그점이 김 대통령이 높이 산 장점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프랑스의 교육개혁의 실패한 것은 교육학자들에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질서를 바꾸는 개혁에는 비전문가가 더 유능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의 교육개혁도 고질화된 뿌리부터 바꾸기 위해 교육학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인식이지요.
­최 내무장관의 기용은 행정개편을 포함한 행정개혁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고 최 장관도 사석에서 그 점을 비추었다지요. 선거를 의식한 행정구역 개편을 의중에 두고 있다는 얘기지요.
­특히 인구 1천1백만명인 서울시의 민선시장이 탄생할 경우 「하늘에 태양이 두개」인 꼴이 되니까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비대한 서울시를 분할,위임하고 싶은게 당연하겠죠. 야당 후보가 서울시장이 될 경우를 가정하자면 더욱 끔찍(?)하겠죠.
­야당에서는 서울시를 분할한다면 당연히 반대할 것입니다. 서울의 경우 승산이 있다고 보니까요.
­그러니까 서울만 분할하는 행정구역 개편은 안할거예요. 다른지역도 함께 조정하겠죠.
­부처간의 통폐합 문제도 행정개혁 대상이죠.
­부처간 통폐합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취임초기 상공부와 동자부,문화부와 체육부를 통합해 각각 상공자원부와 문화체육부로 하면서 엄청난 반발과 혼란을 경험한 대통령이 사석에서 『더이상 부처간 통폐합은 어렵다』고 말했다지요. 집권 초반에 못한 일을 각종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하기는 더 어렵죠.
­아마 일부 부처간 기능조정은 있으리라 봅니다. 예컨대 이번 쌀개방 협상과정에서 드러났듯 대외통상분야의 창구 단일화는 시급한 과제이지요.
­지난해는 감사원이 가장 많은 역할을 했었는데 원장이 바뀐 올해도 그럴까요.
­신임 이시윤원장 역시 전임원장처럼 「똑 부러지게 처리하겠다」는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율곡사업 감사같은 정치성 감사는 줄어들겠죠. 대신 공직사회의 긴장도를 유지할 수 있는 감사의 일상화,민생문제를 풀어주는 민생감사 등은 더욱 강화될 전망입니다.
­올해의 가장 큰변수중 하나는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남북문제라 생각되는데요.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최고수준에 도달하는 시점이 올 상반기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무력도발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권력승계 시점과 맞불려 상당한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북한의 협상자세로 봐 핵문제가 잘 풀리리라는 기대가 많은데요. 그러면 남북관계도 풀리고 국내 정치상황에도 호재로 작용하리라 봅니다. 정부로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싶어할 겁니다. 그러나 만일 핵문제가 안풀려 유엔이 경제제재를 결정하고 동해안에 미국 항공모함이 떠있으면 남북관계가 우리 손을 떠나게 되고 국내 정치도 제대로 될 수가 없겠죠.
○개혁성공 기로에
­핵문제가 풀릴 경우 남북 경제협력이 급속히 진전되리라 봅니다. 대기업들은 대부분 북한담당 부서를 설치,북한시장 개척준비를 이미 마치고 물꼬가 트이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북한과의 경협이 우리의 기대처럼 되리라 예단해서는 안됩니다. 북한은 「흡수통일 당한다」는데 대한 두려움이 상상 이상으로 큰 것 아닙니까. 핵문제가 풀리면 우리보다는 오히려 미국이나 일본과 교류하고자 할 것으로 일부에서 예상하는 것도 이런 북한의 불안감 때문이죠.
­새해를 크게 보면 상반기는 율곡사업감사·북핵·쌀시장 개방비준 문제가,하반기는 자치단체장 공천문제가 각각 정국의 중핵이 될 것 같군요.
­올해 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역시 경제문제가 아닐까요. 물론 경제가 지난해 바닥을 쳤기에 올해는 좀 나아지리라 봅니다. 기업인들은 정부가 국제화·개방화에 맞춰 수출드라이브정책을 펴리라 기대하더군요. 물론 물가나 노사불안요소가 없지 않지만 지난해말 국제수지가 흑자로 반전한 것은 「긴터널을 벗어났구나」하는 안도감을 줍니다.
­김영삼정부는 지난 한햇동안 깨고 부수는 개혁으로 박수를 받았었지만 올해는 쌓고 만드는 개혁을 통해 박수를 받아야 할 때입니다. 진짜 개혁의 성공여부는 올해부터 검증받게 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정리=김진·오병상기자>
□참석자
▲이수근부장
▲문창극·김현일·허남진차장
▲박보균·신성호·김진국·김진·오병상·박영수·김기봉·최훈·이상일·신동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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