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과 기업인의 경제인식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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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계에서 제기하는 '불확실성'지적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연두 회견에서는 "정부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가 안 된다는 데 뭐가 문제냐. 직접 만나면 구체적인 요구도 없으면서 불평만 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고, 언론사 경제부장단 간담회에서는 심지어 "근거 없이 사람 공격하기 가장 좋은 용어가 불안.불확실성"이라고 했다. 그러나 같은 날 강신호 전경련 회장대행은 "정부와 경제계 간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차가 크고, 정책에 구체성이 없어 혼선이 생긴다. 장관들은 정책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재계에서는 정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어느 쪽 말이 옳은가. 대통령과 재계의 인식 차이가 이렇게 크니 어떻게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가. 서로 상대에 대한 원망과 불만을 토로할 것이 아니라 인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게 급선무가 됐다.

盧대통령의 생각과 달리 기업인들은 '정책의 불확실성'을 최대 불안요인으로 든다. 기업 투자촉진의 최우선 과제로 '정책의 일관성 및 투명성'을 꼽을 정도다. 외국 기업들도 비슷하다. "지원도 필요없으니 최소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나 알자"는 얘기다. 실제로 기업인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대통령이 삼계탕 집에서 재벌 총수들에게 한 말과 노동계 인사들에게 한 말이 다르다는 점이다. 대형 국책사업들이 하루아침에 방향을 틀고,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말과는 달리 현장에서는 기업 기죽이는 일만 계속되니 못 믿겠다는 얘기다.

이런 인식의 높은 벽을 그냥 두고서는 투자나 경기 회복, 일자리 창출은 요원한 일이다. 인식차를 좁히는 첫걸음은 盧대통령이 마음을 열고 각계의 지적을 경청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기업인을 수시로 만나 쓴소리도 듣고, 현장을 방문해 실상을 봐야 한다. 기업인들이 피부로 느끼게끔 대통령이 행동으로 달라졌음을 보여줘야 한다. 말로는 설득이 안 된다. 백마디의 현란한 말보다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야 감명을 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