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무기거래와 봉노릇(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영국의 조너선 스위프트가 유명한 항해모험기 『걸리버여행기』를 쓴 것은 앤 여왕이 다스리던 1720년대의 일이다. 이때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제국주의국가들의 식민정책이 본격화됨에 따라 전쟁이 가열되던 시절이었다.
걸리버는 소인국 여행에서 돌아온지 1년만에 다시 모험에 나서 이번엔 대인국에 도착한다. 그리고 대인국이 이웃나라와 불화에 고심하는 것을 보고 화약과 대포의 위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기가 이 무기들을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대인국의 왕은 무서운 무기와 화약에 관한 얘기를 듣고 매우 혐오스러워한다. 대량살상을 가져오는 그런 기계는 분명히 악마가 만든 것일거라면서 화약을 사용하기 보다 차라리 왕국의 절반을 잃어버리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한다. 살육에 의한 승리보다는 평화로운 패배를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전쟁의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꼬집은 얘기다.
그로부터 2백년이 훨씬 지난 지금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평화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갈망도 깊어졌으나 역으로 그만큼 무기의 사용도 확산되고 있다.
세계의 무기거래국가는 모두 70개국이라고 유엔 재래식 무기등록처에 신고돼 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많은 국가들이 비밀거래를 하고 있다. 주로 무기를 파는 나라는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독일 등 이른바 「빅6」으로 일컬어지는 나라들이다. 이들이 세계 무기거래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평화를 가장 목청높게 외치는 국가들이다.
반면에 무기수입국은 한국을 비롯,유고·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대만·중동국가 등이다. 이른바 제3세계국가라고 불리는 개발도상국들이다. 대부분이 국지적 분쟁들이기도 하다.
30여년전 유엔주재 미국 대사 스티븐슨은 유엔 연설에서 『우리는 분쟁이 없는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 다만 전쟁이 없는 세계를 바랄뿐』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분쟁덕분에 돈벌이 잇속 채우는 나라들이 많다.
이번 국방군수본부 무기사기사건도 우리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고 분쟁국가이기에 당하는 수모다. 동족끼리 적대하는 것도 비극이고,남들에게 봉노릇하는 것도 비극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