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돌파로 쌀난국 탈출겨냥/김 대통령 담화 뭘 뜻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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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구구한 변명땐 사태악화” 판단/당정개편·개혁강도 조정 관심
김영삼대통령은 대국민 특별담화 발표를 통해 쌀시장 개방을 「사과」함으로써 개방 충격을 최소화하고 정치적 위기 탈출을 시도했다.
김 대통령 담화의 줄거리는 쌀개방에 대한 사과와 이에 따른 대비책을 마련하겠다는 두 줄기로 요악된다. 이 가운데 물론 역점을 둔 부분은 국면에 대한 사과였다.
김 대통령은 『책임을 통감하면서 진심으로 사과한다』 『책임을 솔직히 인정한다』 『진솔하게 사과한다』 『죄책감을 갖고…』라는 말을 거듭하며 과오를 시인했다.
이 시점에서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적인 이해를 구하는 길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현실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김 대통령은 대선때의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은 물론 그동안 정부가 이번 사태에 적절히 대응치 못한 것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과정과 정부의 대책을 밝히지 못한데 대해서도 『죄송하다』고 했고,UR 대책이 미흡한 것도 『안타깝고 죄송스럽다』고 했다.
김 대통령은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것이 대도라는 소신하에 정면돌파를 시도한 것이다. 구구한 변명을 해봐야 국민을 더 자극시켜 사태만 악화시킨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김 대통령은 정부의 이같은 결정이 어쩔 수 없는 국제적 대세의 결과임을 누누이 설명하며 이해를 촉구했다.
김 대통령은 자신의 과오를 전제하면서 『이제 이 길 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UR협상 타결과 GATT체제 합류가 우리나라에는 전체적으로 유리하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이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듯하다.
김 대통령은 사과담화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정치공세를 의식하여 병자호란때의 주화파·척화파 논쟁을 예로 들어가며 정쟁지양을 호소했다. 민주당은 당장 이 부분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했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상황인식과 대응이 사회적으로 주효할는지는 미지수나 청와대 관계자들은 쌀시장 개방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대세라는 점을 양해할 것이고,따라서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청와대는 사과담화에 뒤이은 2단계 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그것은 우선 담화에서 약속한 각종 농가지원대책·제도개선을 구체화하고 분위기 쇄신을 위한 당정개편일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분노와 불만이 UR 그 자체 못지않게 정부의 무능·무기력·무소신에 집중되고 있다는 국민의 정서를 절감하는 만큼 민심수습 차원의 개각 등 대폭적인 당정개편은 당연시된다.
김 대통령은 담화발표이후 배석했던 각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퇴장했다.
김 대통령의 민심수습 차원의 당정개편과 그 연장선상에서 관심을 끄는 다른 대목은 개혁문제다.
김 대통령의 과거와 같은 고압적 개혁시책 추진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위기 때마다 강공을 시도하는 정면돌파 전법을 구사해왔던 김 대통령이 개혁의 목소리를 더 높이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반론도 없지는 않다.
아무튼 이번 사과담화문을 시발로 김 대통령의 국정운영상 커다란 변화가 올 것만은 분명하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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