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기술자」 집중양성(선진교육개혁:1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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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서 곧바로 쓰게 현장교육/대학생보다 전문대생 더 늘려/「학생작품」 평가때 기업도 참여/어떤 기계도 만질 수 있게 철저히 교육
『최초의 변화는 독일 산업의 극성기인 1970년에 일어났다. 생산과 수출이 정점에 이르렀고 실업문제도 거의 없었던 상황이었다.』
지난달초 본의 독일연방정부 종합청사에서 만난 교육부장관 고문 욥스터 박사는 현재 진행중인 독일 교육개혁을 설명하면서 20여년전에 벌어졌던 상황부터 먼저 얘기했다.
누구도 그 성장을 의심하지 않았던 60년대말 독일 산업의 장래를 가장 걱정했던 쪽은 기이하게도 번영의 견인차였던 기업 자신들이었다는 것이다.
『소수 엔지니어와 다수 기능공으로 짜여진 전통적 생산조직으로는 컴퓨터·통신기술 혁명을 감당할 수 없다. 국제화·기술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고 엔지니어의 의도를 잘 읽을 수 있는 중간기술자(techncian)가 필요하다.』
기업인들의 불만과 요구는 즉시 교육계로 전달됐고 연방과 각 주의 정치인들은 신속히 교육법을 개정해 전문대(Fachhochschule)라는 중견기술인력 양성기관을 무더기로 탄생시켰다.
마찬가지로 지금 벌이고 있는 독일의 제2차 대학교육 수술도 경제계의 집요한 설득에 의해 시작됐다. 『6개월단위로 탄생하는 신제품,2년 단위로 개발되는 신기술에 적응할 수 있는 테크니션들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7년만에 학교를 마치는 많은 대학 졸업자들은 빈둥빈둥 놀고 있지 않은가. 대학생을 줄이고 전문대생을 늘려야 한다.』
욥스터 박사는 수년간 보수적인 교육계를 설득하고 정치적 합의과정을 거쳐 『쓸데없이 길기만한 대학졸업기간(평균 6.8년)을 4년으로 줄이고 2000년까지 대학대 전문대 비율을 현행 75대 25에서 60대 40으로 대폭 바꾸기로 했다』고 말했다.
높은 실업률속의 구인난­. 독일은 전세계적인 보편적인 경제위기를 중견기술인 양성으로 타개해 나가고 있다.
「교육산업」의 최종 소비자는 기업이다. 학교는 고객만족정신으로 기업이 원하는 질좋은 「교육상품」을 짧은 시간내에 생산해야 한다는 경제논리가 두차례에 걸친 독일의 전문대 중심 대학개혁의 핵심이다.
좋으나 싫으나 세계의 교육전쟁은 인문계보다 이공계,대학보다 비대학 고등교육기관(전문대학·전문학교 등),학위보다 자격증,교육기간보다 현장 적응능력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대변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문대는 1백28개,4년제 대학은 1백51개다. 94년 예산안에 나타난 정부 재정지원은 1백40억원대 1천3백억원. 학교수는 비슷한데 투자액은 10배 차이다.
전년대비 재정지원 증가율은 더 놀랍다.
대학이 무려 1백60% 증가한데 비해 전문대는 고작 3.7% 인상에 그쳤다. 중·고등학교 재정지원 증가율은 11.1%.
이쯤되면 올해 정부 각 부처가 참여해 야심적으로 만들었다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의 「산업인력 양성책」은 전문대 고사계획이 아닌가 의심해야 할 정도다.
돈 문제는 그렇다치고 생산현장에서 확인한 전문대 출신 테크니션의 기술수준은 더욱 기가 막히다.
K그룹의 사원연수를 담당하는 강모박사의 말.
『한마디로 불량품입니다.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짧게는 3년,길게는 5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게다가 비싼 돈들여 기계 좀 다룬다 싶으면 어느새 대학에 간다,기름밥 먹기 싫다면서 훌쩍 현장을 떠나버리지요.』
삼성항공 첨단기술연수소 신유균소장(44)은 『전자학과를 나온 졸업생들이 가장 초보적인 측정장치인 오실로스코프조차 만지지 못하더군요.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신입사원들이 대다수고 그나마 학교에 그 장치가 있더라도 다뤄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학교에선 「고장날까봐」 만지지 못하게 했답니다』며 실소했다. 그래서 4년제 출신을 포함해 이공계 신입사원을 뽑으면 1년간 처음부터 기술재교육을 시킨뒤 현업에 투입시킨다고 했다.
파리시 변두리에 있는 구스타프 에펠 종합학교의 공업전문대 과정. 기계공작과 1년생인 학생 6명과 교수 1명이 팀을 이뤄 한 중소기업으로부터 주문받은 플래스틱 자동사출기를 제작하고 있다. 몰리 교수(40)는 지난해에도 이 회사에 새로운 디자인의 플래스틱 포도주 용기 금형을 만들어줘 큰 이익을 보도록 했다.
회사측은 이번에도 비용절감을 위해 자동사출기를 구입하기보다 직접 개발,제작하기로 했고 이를 몰리 교수팀에 의뢰한 것이다.
전자공학과 학생들이 모여 있는 물리측정실은 교수·학생 합동으로 「컴퓨터를 이용한 모터속도 측정장치」를 새로 개발,특허를 냈다. 『이 특허를 자동차회사가 사들여 상품화할 예정이지요. 대당 7천5백만원(50만프랑)에 팔기로 계약을 마쳤습니다.』 담당교수의 자랑이다. 교수들은 하나같이 『기업과 학교가 밀접히 교류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학생들이 현장과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기계를 보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매뉴얼을 통해 조작할 수 있는 능력,기존기계를 개량하고 나아가 새로운 기계를 개발할 수 있는 현장 전문가를 기르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실습장의 시설과 운영자금이 기업으로부터 받는 프로젝트 비용으로 충당되는 것은 취재팀이 방문한 어느 나라에서든 상식에 속하는 사항이었다. 부러운 점은 돈보다 기술자·직업교육에 쏟는 일반 기업의 관심과 신뢰.
기업은 3∼6개월(프랑스),2∼12개월(독일)에 달하는 전문대 학생들의 현장연수를 군소리 없이 받아준다. 학생들이 만든 작품평가에는 교수와 관련업체 담당자들이 함께 참여한다.
◎우리 현실과 개선책/“학교는 현장외면,기업은 외국기술도입” 악순환/평가·인정제 채택… 기업부설 기술대등 만들어야
우리나라 공업전문대중에서 교수진과 시설이 가장 좋고 취업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서울 동양공전이 올해 기업과 맺은 프로젝트 계약 건수는 총 3건에 1억여원. 이 학교 1년 운영비 90억원의 1% 조금 넘는 비율이다. 교수진 1백10명중 기업이나 연구소에서의 현장근무 경력자는 겨우 15명에 불과하다.
미국의 2년제 전문대학이 교수자격 필수요건으로 전공분야 현장에서 4천시간 이상,독일이 5년 이상 근무한 경력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교수의 실무경력→긴밀한 산학협동→학생의 높은 현장적응력→기업의 기술개발·개량으로 이어지는 기술교육 시스팀의 선진국 테크니션들의 자부심의 원천이라면,교수의 이론 중시→기업 따로·학교 따로→학생의 현장에 대한 두려움→기업의 기술수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우리 전문대의 「교육경쟁력」을 최악으로 몰아넣는 요인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눈꼽만큼의 재정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것과 함께 ▲학교별 평가·인정제도의 도입 ▲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기술대학의 신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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