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 국회(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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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개인간이나 집단간에 벌어지는 싸움에서부터 나라간에 벌어지는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쟁은 시비를 가리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서로 자기쪽이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다가 급기야 행동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대개 어느 한쪽이 정당하면 다른 한쪽은 부당하게 마련이지만,양쪽 모두 옳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양쪽 모두 잘못인 경우도 있다.
양쪽 모두 잘못이 아닌한 싸움이 진행중이라도 대화의 여지는 계속 남는다. 제3자의 객관적인 판단이 시비를 가려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의 잘못으로 인한 싸움일 때 그것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같은 상황을 일컬어 흔히 이전투구 혹은 난장판이라 표현한다.
난장은 본래 우리 전통사회에서 시장개설의 한 형태로 등장했다. 정해진 장날에 열리는 것이 아니고 물자가 다량으로 생산되는 지역이나 인근지방의 생산물이 많이 집산되는 지역에서 특별히 터놓은 장을 난장이라 했다. 난장은 그 지방 최대의 행사로 온갖 물자가 동원되었고 엄청난 돈이 유통되었으므로 자연 사기·도박·폭행 등 악의 온상으로도 한몫하게 되었다.
조선말 후기에 이르러 각지의 내로라하는 사기꾼·도박꾼·건달패들이 몰려들어 제각기 솜씨를 뽐내는 「판」을 벌이면서 본래 바람직한 상행위의 현장이었던 난장은 모든 비행과 악행을 상징하는 「난장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시정의 잡배들이 만들어내는 그같은 분위기에서 윤리·도덕이라든가 질서 따위를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해방후 우리나라의 정치사에서 국회내의 소동을 「난장판」으로 표현한 예는 이루 헤아릴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많다. 국민들이 믿거니 뽑아준 선량들이 스포츠 가운데 가장 격렬하다는 미식축구선수들처럼 뒤엉켜 싸우는 모습은 차라리 비감한 느낌을 갖게 한다. 특히 2일의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안 통과를 둘러싸고 벌어진 「난장판」에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불과 몇년전까지의 공격측이 수비측으로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무릇 민주주의 정치의 요체는 서로간의 이해와 대화에 있다고 한다. 더구나 문민정치시대에 다시금 「난장판 국회」를 바라봐야 하는 국민들의 심회는 착잡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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