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쓰는가정이야기>다락의 추억과 신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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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집도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집안에 참으로 많은 물건들을 들여놓고 산다.소파나 냉장고 같이 덩치가 큰 것들,또 양말이나애들 감기약 같이 소소한 것도 있다.마음먹고 차근차근 챙겨보면아마도 수천가지 물품들이 있을 것이다.이중에는 우리 식구가 매일 쓰는 칫솔이 있고,1년에 한번쯤 쓰거나 말거나 할 손전등이있다.심지어는 결혼식때 매었던 흰 넥타이처럼 앞으로 쓰지 않을것도 있다.이렇게 많은 것들이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각기 집안 이 구석 저 구석에 잘 숨어있기 때문이다.
손전등은 거실 장식장 왼쪽 맨 밑칸에,흰 넥타이는 안방 장롱오른쪽 문짝 넥타이걸이 맨 안쪽에 걸려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그렇지만 올 봄 내 생일에 막내아이가 선물한 스킨로션이 집안 어느 구석에 숨어있는지 나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내 아내는 수천가지나 되는 우리집 살림살이들을 척척 찾아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10여년전 갓 결혼해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날 때 마지막으로 태엽감는 자명종 시계를 이민가방에 쑤셔 넣은 적이 있었다 .이 시계가 현재 우리집 어느 서랍속에 묻혀 있는지도 내 아내는 알고 있을 터다.
아내나 나는 어린 시절 한옥에서 자란 세대다.그래서 안방 아랫목 뒤로 있던 다락에 몰래 기어올라가 거기 쌓여있는 별의별 신기한 물건들을 뒤져보느라 한나절을 보낸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증조할아버지의 벼루도 있었고,내가 돌날 신었던 고무신 한켤레도 있었다.우리 윗 세대들은 집에 들어온 것은 무엇하나 내다버리는 법이 없었다.그러니 안방 다락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보고(寶庫)였고,아이들은 여기서 시간을 보내며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또 자신으로 이어지는 가족의 역사를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가 있었다. 내 아내도 장모님의 전통을 이어받아 아무 쓸데가 없어진것도 쉽게 버리지를 못한다.그런데 우리는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다락이 없다.허드레들을 쌓아둘 공간이 없다는 말이다.
국민학교 3년생딸과 유치원생 아들은 좋은 놀이터를 잃어버린 셈이다.가뜩이나 무엇이든 한번 쓰고 버리는 인스턴트식 세태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성장한다.이 아이들이 후에 간직하고 물려주게될 우리 가족에 대한 추억은 사진 몇장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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