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은 성과 시장개방은 짐/김 대통령 방미 득실계산을 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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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 지연작전 쐐기 일단 성공/핵문제/UR타결에 한국역할론 부담/경제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북한 핵문제에 우리 입장을 관철시키는 외교적 성과를 거뒀는지 모르나 「시장개방 대폭 확대」라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 같다.
국내 개혁을 누차 강조하던 김영삼대통령이 귀국인사에서 『이제 우리는 문을 열고 세계로 나가야 한다』며 국제화를 강조한 것도 이같은 통상압력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시장개방이라는 전반적 흐름속에서도 『쌀시장 개방은 대통령직을 걸고라도 막겠다』고 공언한 터여서 앞으로 농수산물 시장개방 문제가 외교마찰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김 대통령의 이번 방미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시한이 12월15일이어서 어차피 시장개방 압력이 가속화되긴 했겠지만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을 분명히 전한 셈이다.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한국에 투자제한 철폐,금융시장 개방확대,지적재산권 보호조치 강화,외국인의 영업활동을 제한하는 각종 제도개선,농산물 등에 대한 검역완화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운 미 상무장관이 한미 정상회담 직후 미 팍스 TV와의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시장개방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우리는 더 많은 시장개방을 요구한다』고 말한 것은 미국의 시장개방 요구가 만만치 않았음을 시사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UR 타결시한을 앞두고 모든 나라는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했고 뒤이어 열린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도 『UR의 성공적인 타결을 위해서 모든 상품의 예외없는 관세화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승주장관은 『UR의 성공적 타결은 국제경제는 물론 한국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나 한국의 특수사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호소했다는 후문이다.
미국은 지난 7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합의에 따라 발족된 경제협력대화(DEC)를 통해 구체적인 시장개방 요구사항들을 제시할 것으로 전해져 정부는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
미국의 한 관리가 『여러분이 북한 핵에 무엇보다 관심이 있을줄 아나 미정부로서는 경제문제가 더 중요하니 이에 대해 먼저 언급하겠다』고 말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 한미 양국 정상은 한국정부의 입장을 많이 받아들여 기존 방침을 재확인하고 북한에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는 최후 통첩을 했다. 한국은 이번에 대북한 핵정책에 융통성있는 대안을 마련하려던 미국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선 핵사찰 수용,후 제반문제 협의」라는 원칙을 고수했지만 새로운 접근방식을 내놓지 못한 것은 물론 북한 핵해법을 둘러싸고 한미 양국이 미묘한 견해차를 노정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김 대통령과 회담하기 직전에 북한 핵문제에 관한 이니셔티브를 회담뒤 선언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으나 예정보다 배이상 오래 협상을 했으면서도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 않은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정상회담에 참석한 정부 실무자들도 한미간에 북한 핵해법을 둘러싸고 견해차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면서도 실무협의 과정에 기존 북한 핵정책이 과연 옳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있었다고 실토한다.
이를 위해서는 방향설정을 보다 분명히 해야하는데 이 방향을 논의하다 보니 두 전제조건(남북대화,IAEA의 사찰수용)이 먼저 충족되면 한꺼번에 모든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쪽으로 입장정리가 됐다고 한다. 때문에 정부는 북한이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리며 전술적인 지연작전을 펴지 못할뿐 아니라 북한에 분명하게 입장을 밝혀야 하는 부담을 주는 등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한반도 문제에 관한 직접 당사자라는 명분을 확인받은 대신 핵문제 해법과 시장개방에는 미국의 의도대로 상당폭 양해했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많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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