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협 실질대안 충실히 제시(APEC 회담 뭘 남겼나: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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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선진국 기술이전·교육기금 설치합의 성과/미,주최국 입장활용 EC 갈등 해결카드로
『세계경제의 중심이 과연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인가』 시애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회의(APEC)를 취재하던 서방기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APEC이 하루아침에 세계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일종의 컨퍼런스 성격이던 아시아국가들의 모임이 금년 시애틀 회의를 계기로 일약 유명해진 것이다.
각료회의뿐 아니라 회원국 정상회담이 처음으로 열렸고,내년에도 정상회담을 걔최키로 했다. 게다가 그동안 소극적이던 미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APEC의 변화는 어떤 형태로든지 훨씬 가속화될 수 밖에 없게 됐다.
회원국 정상이 자리를 같이해서 선언문만 낭독한게 아니라 경제협력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제법 충실하게 제시했다는 것도 특기할만 하다. 선진국의 은퇴기술자들을 개도국에 보내 기술지도를 하도록 하자는 것은 구체적인 기술이전을 기대할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아이디어다.
이밖에도 비즈니스맨 포럼의 창설,교육기금의 설치 등은 정상회담이 마련한 예정된 「선물」들이다. 주로 아세안국가들을 겨냥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APEC은 자체의 과제해결보다도 우루과이라운드(UR) 문제에 더 심혈을 기울였다. APEC이 열리고 있는 시애틀이 아니라 UR문제를 다루는 제네바의 GATT 회의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물론 그것은 미국의 뜻이었다. UR타결의 시간적 제한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미국은 APEC 주최국으로서의 입장을 충분히 활용했다.
미국이 이번 APEC을 상대로 UR 지지를 강하게 촉구했던 것은 두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미국과 EC와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있어 APEC이야말로 안성맞춤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계경제(GNP)의 50%를 차지하는 APEC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임으로써 EC와의 씨름에서 한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둘째 APEC 회원국들 자신이 거부해온 사항들을 APEC의 이름으로 해결하려 했고,그 결과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무관세화를 확대 적용시키는데 성공했을뿐 아니라,소위 APEC 패키지의 추가적인 관세인하도 성사시킨 것이다.
한국의 경우 「쌀개방 동의」를 의미하는 「예외없는 관세화」 요구를 제외시키느라 대부분의 협상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APEC을 둘러싼 미국과 일본의 갈등은 이번 회의에서 더욱 증폭됐다. 일본은 자신의 주장을 가급적 삼가고 미국의 주도를 조용히 지켜보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일본 특유의 「표나지 않는 반대」를 계속했다.
APEC의 기본 성격을 지금의 협력체에서 공동체로 끌어올리자고 미국이 역설했고,또 이같은 주장이 외견상 채택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일본은 여전히 반대의 뜻을 전혀 굽히지 않고 있다.
정상회담후 일본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호소카와 총리는 어디까지나 APEC은 공동체 아닌 협력체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었다. 제 아무리 미국이 그래봐야 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일본쪽에 깔려 있다.
APEC에 관한 한국의 입장은 확실하다. 어떻게 해서라도 통상문제에 있어 쌍무적인 압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다자간 협상쪽으로 끌고 가는 것이요,우리로서는 활용가능한 유일한 선택이 바로 APEC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상회담 제의를 앞장서서 지지했었고,내년에 또 하자고 제의한 배경도 그래서다.
그러나 APEC의 장래를 낙관하기에는 많은 난관들이 가로 놓여 있다. 회원국의 확대기준조차 합의를 못보고 있는 형편이다. 말로는 근사한 「개방적 지역주의」라는 말이 과연 무엇인지,확실한 개념정의도 안되어 있는 상태다.
더구나 한지붕 밑에서 딴 살림을 차리게 될 아세안그룹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그룹들과의 관계정립을 어떻게 해 나갈지도 어려운 숙제거리다.<시애틀=이장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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