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정상회의와 한국(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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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랫동안 몇몇 나라의 이상론처럼 여겨지던 환태평양 공동체 제안이 이제는 기대 가능한 구상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지난 89년 단순한 협의기구로 출범한 이래 네차례의 각료회의를 통해 역내의 경제협력과 무역증진을 위해 노력해온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APEC) 회원국 지도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능동적이고도 포괄적인 지역협력기구를 탐색하게 된 것이다.
김영삼대통령이 참석하게 될 19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담은 냉전 종식이후 모색단계에 있는 이 지역의 새로운 정치·경제질서를 어떻게 형성하고 협력구조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찾으려는 모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다른 어느나라보다 안팎을 통해 격변기에 있는 우리에게 APEC의 장래는 더욱 각별한 관심사다.
현재로서 APEC의 주된 관심사는 물론 경제협력과 무역자유화 문제다. 따라서 정상회담에 앞서 역내 시장을 개방적 협력체로 만들기 위한 논의가 중심을 이루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모임에서 역내의 상호투자를 증진하고 장애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무역투자 기본문서를 채택하는 것도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는데 하나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
우리가 APEC 정상회담에 각별한 기대를 갖는 것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과 현실적으로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한반도의 정세와 관련해 주요 지도자들과 논의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점이다. 우선 장기적인 관점에서 APEC를 통해 경제협력뿐 아니라 정치·군사적인 안정에 기여하는 제도적인 틀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문제는 특히 남북한의 통일과정이나 통일이후의 극히 불안하고 유동적인 상황을 예상하는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안보구조에 관한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쌍무적인 협력관계는 있었지만 다자간 안보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개입축소 기미를 보이고 있는 미국의 정책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의 역할증대에 불안한 인접국가들로서는 관심이 큰 문제다.
특히 우리로서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각기 독자적인 능력을 지닌 일본 및 중국과는 달리 다양한 국제관계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APEC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기구다. 창설 당시부터 우리가 적극 참여해왔던 것도 그런 뜻에서였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김 대통령이 처음으로 중국 지도자와 만나는데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북한의 핵문제 등 한반도 현안과 관련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 지도자와 의견을 교환,협력을 촉구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지도자들에게 핵문제의 중요성을 국제적으로 환기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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