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한일 정상회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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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일 고대사에서 두나라 교류의 한 접점이기도 했던 고도 경주에서 6일 한일 수뇌가 만난다. 형식면에서는 조촐하고,내용면에서는 힘겨운 씨름거리가 없는 홀가분해 보이는 실무회담이지만 두나라 관계의 앞날과 관련해 여러가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만남이다.
두나라 관계개선의 고비마다 과거사라는 걸림돌로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현실을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점을 마련할 수 있다는데서 우선 경주회담은 기대를 갖게 한다. 그것은 호소카와(세천호희) 일본 총리가 과거 어느 일본 지도자보다 역사적인 과오에 대해 솔직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과 김영삼대통령의 미래지향적인 관계설정에 대한 적극적인 접근노력 때문이다.
최근 몇년동안 미래지향적인 관계라는 말속에서 추진되어왔던 두나라의 관계개선 노력은 지난해 1월 미야자와(궁택희일) 일본 총리의 방한 때 부각된 정신대 문제 등 과거사 때문에 오히려 냉랭한 기류가 감돌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 경주회담은 그러한 분위기에서 벗어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 구 질서의 껍질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제환경을 모색하는 가운데 과감한 개혁을 내걸고 있는 새정부 지도자들이 회담을 갖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미래에 대해 신선한 기대를 갖게 한다.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개혁하고 바뀌어야 할 부문들은 정치·외교·경제 등 수두룩하다. 이에 대처하는 것은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활발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일 두나라 지도자가 지금까지의 앙금을 털어버리고 협력과 공동번영의 길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별히 의제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는 하지만 두나라 정상이 의견을 나누어야 할 내용들은 많다. 우선 우리에게 항상 관심거리가 되는 과거사 문제가 있으나 두 수뇌 모두 전향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 무리없이 처리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한가지는 두나라 사이의 고질적인 문제로 단골처럼 제기되어온 무역과 기술협력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지난날 정치적인 논리로 해결하려 했던 타성에서 벗어나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통령의 접근이다. 이는 일본측이 늘 주장하던 이야기로,이제는 구체적인 경제협력 방법 등이 논의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의 이러한 태도에 따라 두나라 경제계에서는 이미 실질적인 방안 등이 제시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 이외에도 북한 핵에 대한 공동대응 문제,러시아의 핵폐기물 동해투기에 대한 공동대응방안 등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없다. 이 모든 문제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정치적인 논리 때문에 실질적인 핵심에서 벗어나 겉돌기만 하던 관계에서 벗어나는 정상회담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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