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포화속의 관료(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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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분위기다. 여객선 참사후 일선 공무원들이 납작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고 「복지부동」이란 비아냥을 받고 있는가하면 정부는 관료들의 의식을 개혁하겠다고 뻔질나게 감사와 점검을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는 해외로부터 한국 관료들을 질타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가 뉴욕 외신기자클럽 연설에서 『한국관료의 경직성과 통제지향성이 세계화의 장애요인』이라고 비판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기업인들이 미국과 활발한 사업을 원하면서도 한결같이 그 장애물로 관료조직을 꼽더라고 전하면서 규정에 맞추려고 수없이 서류와 세부계획을 뜯어고쳐도 관계부처중 누군가가 번번히 「규정위반」이라고 해 결국 사업을 성사시키지 못했다는 미국기업의 실례를 소개했다.
또 독일 경제단체들도 한국의 번잡한 행정규제와 불명확한 법규,담당공무원의 자의적·관료적 업무처리 등을 비판했다고 한다.
물론 이들의 비판속에는 자국기업의 한국시장 진출이 어려운데 따른 불만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공무원들이 국익을 위해 다소 무리하게(?) 외국기업을 규제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비판중 찌르는 대목이 많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수없이 서류를 고쳐가도 퇴짜를 맞게 되는 법규의 불명확성,담당자에 따라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하는 자의성,규정만 앞세우는 관료의 경직성… 등은 일반시민이나 기업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얼마전 중앙일보 모스크바특파원이 이런 기사를 보내왔다. 모스크바 거주 한국인이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엉뚱한 부가세 고지서를 받고 놀라 알아봤더니 북한·베트남을 포함한 세계 88개국이 체결한 면세협정을 관료들의 무성의로 우리만 체결하지 않아 억울하게 세금을 물게 됐다는 것이다.
또 이런 얘기도 있다. 한 기업인이 불우이웃돕기성금으로 1백만원을 구청에 가져갔더니 『나중에 감사받을 일도 귀찮고 번거로우니 신문사에 갖다내라』고 해 중앙일보에 가져왔다는 것이다.
김영삼정부 출범이후 관료들의 자세가 계속 큰 문제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관료들을 뛰게 할 묘방이 뭘까. 「채찍」인가,「당근」인가,그 「합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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