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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작&상영작] 페이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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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세계적인 SF 작가 필립 K 딕)의 명성에 따른 작품성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면 20일 개봉하는 '페이첵'은 주말용 오락거리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물론 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다른 영화들, 가령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비한다면 메시지나 규모 면에서 처지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디스토피아에 대한 날카로운 예지나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은 화려한 시각의 향연을 포기한다면, '페이첵'은 감독인 우위썬(吳宇森)이 할리우드로 건너온 뒤 선보인 액션 대작, 가령 '페이스 오프'에서 보여줬던 장기를 맛보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지칠 줄 모르고 결말로 달려가는 속도감 있는 진행, 그리고 줄거리와 비교적 잘 교직되는 액션이 그것이다.

복제인간('블레이드 러너').범죄 예방('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이어 '페이첵'이 제공하는 소재는 기억 삭제다. 하이테크 기업의 공학자 제닝스(벤 에플렉)는 극비 프로젝트에 3년간 참여하는 대가로 여덟자리 숫자의 보수를 제안받는다. 3년 동안 일어났던 일은 기억 삭제 프로그램을 통해 깨끗이 지워진다는 조건이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끝낸 그에게 거액의 보수는커녕 자질구레한 소지품이 들어 있는 봉투만 덩그러니 남겨지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기억 삭제와 쌍두마차로 이 영화(정확히 말하면 원작 소설)를 끌고 가는 또 다른 축은 바로 이 주인 모를 소지품이 제닝스의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한다는 설정이다. 선글라스와 담배로 시작돼 로또로 끝을 맺는 이 '소지품과의 게임'은 '페이첵'에 스릴러적 맛을 첨가한다. 지하철 철로 장면이나 오토바이 역주행.봉술 격투 등 벤 에플렉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도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 요소 중 하나다. 에플렉은 하도 격렬한 장면이 많아 양복만 마흔일곱벌을 갈아입어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1953년 출간된 원작과 다른 몇가지

1. 제닝스가 비밀 프로젝트에 참가한 기간이 영화 속에서는 3년이지만 원작에서는 2년이다. 2. 영화에서는 돌려받은 봉투에 담긴 물품이 20개지만 원래는 승차권 반쪽.물품보관증.철사 한가닥.포커칩 반쪽.천 조각.버스 토큰.코드 키 등 7개다. 3. 영화 속에서 주가폭락 등 미래를 예언하는 기계는 원작에서는 타임 스쿠프와 시간거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타임 스쿠프는 다른 시간대의 물건을 집어올 수 있는 일종의 갈고리 같은 장치며 시간거울로는 다른 시간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영화.소설 모두 제닝스는 이 장치들을 통해 미래에 자신이 처할 상황을 내다보고 자신이 필요할 물건을 준비한다는 설정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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