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각>어렵게 따낸 내년 국악의해를 맞으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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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문화체육부가 「마침내」 내년을 국악의 해로 정했다.
마침내란 단어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국악계가 세번째 도전 끝에 가까스로 따낸 「국악의 해」인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무용에 밀려「춤의 해」에 자리를 내줘야했고 올해는또다시 출판에 밀려「책의 해」의 그늘에 서있어야 했다.사실 금년 초에도 한국국악협회이사장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로 국악협회가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어 내심으로는 맞상 대가 된 미술에 또다시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것은 아닌가 초조하기까지 했었다. 문화체육부로부터 그 해의 문화장르로 지정되면 10억원의 예산이 지원돼 그 장르 예술인들이 의욕적으로 예술활동을 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거기다 대대적인 매스컴의 지원으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모아 사랑받는 예술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국악인들이「국악의 해」에 거는 기대는 무엇보다 크다. 솔직히 말해 그간 국악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턱없이 낮았다.서양음악에 밀려 음악교육시간에도 국악이 제자리를 찾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일찍부터 국악과 담을 쌓고 살아왔기에 사람들이 국악은 무조건재미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가까이 다가설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많은 현장경험을 통해 국악이 서양음악보다 훨씬 우리의 체내에 파고드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알아냈다. 국민학교 6년에 중.고교 6년,도합 12년이나 서양음악교육을 받는데 정작 학교를 졸업한 후 교향곡이나 오페라 같은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 우리 실정이다.
반면 우리의 전통음악은 한시간 남짓한 강의만으로도 청중이 금방 친밀감을 갖게 될 뿐 아니라 그 음악을 즐기기까지 하는 것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우리 전통음악이 느리고 단순하고 재미없고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한국음악을 좋아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 내가 늘 느끼는놀라움이다.
마치 친어머니를 만났을때 여지껏 모시고 살던 어머니가 내 어머니가 아니란 걸 발견하고 아주 쉽게 친어머니에게 정이 가는 것과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양음악에선 음의 진행이 한 음에서 다음 음으로 오직 직진이있을 뿐인데 비해 우리 음악은 음 하나하나에 여러가지 변화를 안고 만들어진다.반주 없는 서양음악이 싱겁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같은 차이 때문이다.
서양음악의 장점인 화성은 음정이 다른 여러 음을 층으로 쌓아만든 것이고 또 음마다 제 각각의 색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입체적이고 화려하게 들린다.
우리음악은 화성은 없지만 음을 흔들거나 흘려내리거나 밀어올리는등 여러가지로 모양을 부려 부른다.1백만명 돌파라는 경이적인대기록을 수립한 영화『서편제』가 저토록 뜨겁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며 판소리의 매력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우리의 소리맛 때문이라고 나는 여기고 있다.
身土不二.
우리 농산물만이 우리에게 맞는 것이 아니라 음악도 우리 음악이 우리에게 맞는 것이란 사실을 깊이 이해하는「국악의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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