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루르드 성지의 기적/샘물로 병치유 점점 줄어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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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7개국 의학자·종교인 세미나/“의학 지식 발전하면서 감소”/73년이후 인정 한건도 없어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한번은 가보고 싶어하는 성지 가운데 하나인 루르드. 여기서 나오는 샘물로 몸을 씻으면 불치병도 말끔히 사라진다고 해서 지금도 해마다 4백만명의 순례객들이 줄을 잇고 있는 프랑스 피레네 산록의 작은 마을 루르드의 기적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지금부터 1백35년전인 1858년 루르드의 가난한 양치기 소녀 베르나데트 앞에 성모가 발현한 것으로 알려진 이후 베르나데트 성소의 샘물로 의사도 못고치는 병을 고쳤다는 주장은 셀 수 없이 많다. 루르드의사협회에 공식접수된 사례만 6천건의 넘고 그중 의사들이 의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례로 교회당국에 보고한 경우만도 2천건에 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회당국에 의해 「기적」으로 공인된 치유사례는 65건이 전부다. 더구나 최근 들어서는 교회의 기적 판정이 더욱 드물어져 마지막 사례는 지난 73년 델리치아 치롤리라는 이탈리아의 12세 소녀가 골수암으로 다리를 절단하기 직전에 루르드 성수로 다리를 씻은 뒤 목발을 놓고 멀쩡하게 걸어 고향으로 돌아간 경우다. 그나마 논란 끝에 지난 89년에야 루르드 교회당국은 치롤리 케이스를 기적으로 인정했다.
이처럼 갈수록 루르드의 공인된 기적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지난주 루르드에서는 세계 17개국에서 온 4백여명의 의학자와 종교인들이 참석한 이색 세미나가 열렸다.「치유와 기적」을 주제로 한 이 세미나는 루르드 기적치유의 현대적 의미를 고찰할 목적으로 루르드의사협회와 프랑스 가톨릭의사회가 공동 주관했다.
이 회의에서 나온 결론 가운데 하나는 의학 발달과 기적치유의 감소는 궤를 같이 할 수 밖에 없다는 점. 의학 지식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의학적으로 해명되지 않는 사례가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1925년부터 45년까지 루르드의사협회에 공식보고된 4백90건의 기적치유 사례중 의사협회는 99건(20%)을 해명 불가로 교회당국에 이첩했다.
그러나 45년부터 89년까지의 경우 총 1천1백50건에 달하는 보고사례의 0.5%인 57건만을 교회에 넘겼을 뿐이다. 지금까지 루르드의사회가 해명불가로 판정한 2천건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현대의학이 발달하기 전인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발생한 사례들인 셈이다.
지난 54년 루르드에 설치된 국제의학위원회의 엄격한 판정기준도 갈수록 루르드의 기적이 감소하는 이유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세계 각국 출신의 전문의학자 30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루르드의사협회의 판정을 재검토해 교회당국 이첩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심리상태와 관련이 있는 병은 일체 제외하고 생명을 위협하거나 치유가 불가능한 중대한 병만을 대상으로 하며 회복기간이 없고 치유상태가 최소 6∼7년은 지속돼야 하는 등 이 위원회는 기적 후보 선정에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루르드의 기적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언젠가는 아예 없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상징하는 다른 「신호」는 앞으로도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이 세미나에 참석한 사위케 루르드대주교의 예언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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