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보다 은행이 더 긴장(금리자유화시대: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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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명목 금리 올라도 마찬가지”/기업/부실채권 많은 곳은 속앓이/은행
2년만에 다시 한 단계를 높이는 금리자유화가 내달 1일로 다가왔지만 그 분위기나 반응들은 지난 91년 11월의 1단계 시행 때와 사뭇 다르다.
이제는 금리자유화의 「원론」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때가 벌써 지났고 「각론」이 절실해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우선 1단계때 「금리상승」을 매우 걱정하고 불안해하던 기업들이 이번에는 덤덤한채 별 말이 없다.
지금까지도 사실상 꺾기 등을 통해 시장금리를 다쳐주었던데다가 은행 대출의 비중이 별 것 아니게 된 상황에서 명목금리가 좀 올라봐야 달라질게 거의 없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에는 금융기관들이 기업들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변화의 조짐」을 실감하고 있다.
○변화의 조짐 실감
무언가 달라져야겠다는 태도가 곳곳에서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의욕반,불안반」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서로들 옆집 눈치를 보며 허둥대는 기색이 짙다. 부실채권 때문에 속으로는 수지상태가 엉망인 일부 은행들은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은행들이 눈치없이 기준금리를 너무 많이 올려도 걱정,이게 무슨 금융개혁이고 금리자유화냐는 소리를 들어도 걱정이던 금융당국은 서서히 윤곽이 잡혀가는 「자유화이후의 그림」을 보고는 내심 『이 정도면 됐다』는 표정이다.
노골적인 행정지도를 하지 않고도 대신 「종용」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등장시키면서 기업과 은행 양자를 어느 정도 조화시키는 그림을 그려내지 않았느냐는 판단에서다.
이같은 틈바구니에서 가장 큰 부담을 지게 된 일반 가계는 정작 아무 말이 없다.
○다소 성숙된 모습
예나 지금이나 「가계자금은 소비성자금」이라는 일방적 논리에 군말없이 순응해온 일반국민들은 이번에도 기업이나 은행들처럼 집단적인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금리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처지인 것이다.
이것이 이번 2단계 금리자유화를 맞는 각 경제 주체들의 대체적인 모습들이다.
2년전의 1단계 자유화 시행 때를 다시 떠올려보면 그래도 다들 「성숙된」 모습들이라고 할만하다.
무엇보다도 예전처럼 「금리자유화는 곧 금리인상」이라는 논리만이 막무가내로 앞세워져 말로만 자유화를 이루는 상황이 다시 반복되고 있지 않는 것만도 대견한 일이다.
여기에다 기업들보다 금융기관들이 훨씬 더 긴장하고 있다는 것도 자유화의 본래 취지를 생각할 때 매우 바람직한 구도다.
금리자유화란 단순히 금리가 올라간다는 것이 아니라 시장금리 밑으로 억눌려왔던 금리가 시장금리에 다가서면서 금융기관들로부터 달라져 결국은 건실한 기업이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더 싸게 쓸 수 있는 상황을 하나 하나 만들어 가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년동안의 1단계 자유화 기간중 당국은 사실상 금리를 규제해왔고 인위적으로 두번씩이나 금리를 내리기도 했다.
따라서 말뿐인 자유화라는 비난도 들어왔지만 그래도 이번 2단계 자유화가 이뤄지는 모습을 보면 1단계 금리자유화가 그리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후 평가를 내릴만도 하다.
그런 만큼 진짜 어려운 금리자유화는 정작 「이제부터」라는 것도 다시한번 강조되어야 한다.
○각 기관 발등의 불
통화관리 방식의 개선,국채발행 방법의 개선,재정과 금융의 역할 재정립,은행의 자산관리와 부실채권 대책,기업행태의 변화 등 숱한 난제들이 이제부터 정부·은행·기업 모두에 「발등의 불」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개혁」이 사정보다 훨씬 더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제라는 것을 다들 실감할 수 있을 때 이번 금리자유화는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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